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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인터뷰] 김형오 전 국회의장 "보수의 몰락.. 국민심판 수용 안하면 다음 선거도 희망 없다"

김학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7.18 17:20

수정 2018.07.18 20:58

원로에게 듣는 '보수의 길' 김형오 전 국회의장을 만나다
보수정치인을 향한 쓴소리.. 선배들의 치적 위에서 낮잠만 자
애국심·도덕성·가치로 재무장하고 한국당 비대위원장에 힘 실어줘야
이 시대 청년을 향한 조언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 집필하며 배운 어려운 시대 버텨낸 선생의 인생 현재의 젊은이에게 알려주고 싶어
최근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란 책을 집필한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지난 17일 서울 임정로 백범김구기념관에서 파이낸셜뉴스와 가진 특별인터뷰에서 오직 국가와 민족을 위해 일생을 바쳤던 백범 김구의 삶을 통해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투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난파위기에 처한 보수진영을 향해 "보수는 신념체계인 동시에 가치체계"라며 "그런데 보수정치인들은 자기가 지킬 가치가 있었나. 보수는 선배들이 쌓아올린 것 위에서 낮잠이나 자고 있었다"고 일갈했다. 사진=박범준 기자
최근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란 책을 집필한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지난 17일 서울 임정로 백범김구기념관에서 파이낸셜뉴스와 가진 특별인터뷰에서 오직 국가와 민족을 위해 일생을 바쳤던 백범 김구의 삶을 통해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투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난파위기에 처한 보수진영을 향해 "보수는 신념체계인 동시에 가치체계"라며 "그런데 보수정치인들은 자기가 지킬 가치가 있었나. 보수는 선배들이 쌓아올린 것 위에서 낮잠이나 자고 있었다"고 일갈했다. 사진=박범준 기자


이 나라가 거저 생긴 나라가 아니다. 선열들의 피와 눈물과 땀으로 생긴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백범 김구를 통해 이걸 느껴야 한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의 어조는 단호했다. 보수 정치인으로서 백범김구선생 기념사업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김 전 의장은 백범을 통해 이 시대의 청년들과 어려움을 겪고 있는 보수진영에 일갈과 함께 조언을 쏟아냈다.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 자리를 한사코 거절하며 현실 정치와 거리를 둬왔던 김 전 의장은 지난 17일 서울 임정로 백범김구기념관에서 파이낸셜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백범을 통해 우리 사회가 깨닫고 느껴야 할 점이 많다고 강조했다.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란 책을 최근 집필한 김 전 의장은 백범을 "위대한 보통사람"이라고 평했다.

상민으로 태어나 평범한 인생을 살기 원했던 백범. 그런 그를 당시 시대가 키워냈고 백범은 꿋꿋하게 독립운동의 길을 걸으며 어려운 과정을 견디고 버틴 것은 오늘날의 청년들이 보고 배워야 할 자세로 꼽았다.

이 시대 청년들에게 어려움을 견디고 버틸 수 있어야 함을 강조한 김 전 의장은 현재 위기를 겪고 있는 보수진영에 대한 쓴소리도 잊지 않았다.

김 전 의장은 보수정치인들을 향해 "보수는 신념체계인 동시에 가치체계다. 자기가 지켜야 할 가치를 지키는 게 보수"라며 "그런데 보수정치인들은 자기가 지킬 가치가 있었나. 보수는 선배들이 쌓아올린 것 위에서 낮잠이나 자고 있었다"고 일갈했다.

그는 "자칭 보수라는 사람들은 입으로만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를 말해왔다"며 "이걸 지키기 위해 보수라는 사람들이 어떤 노력을 해왔나. 그동안의 과일만 따먹고 덕만 봤지"라고 비판했다.

김 전 의장은 "애국심과 도덕성은 철저히 무시하고, 정치는 아무나 한다고 생각하는, 특히나 '빽'만 있으면 된다고 정치를 하면 안된다"며 "내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수업이나 단련 과정을 거쳤는지 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보수정당이 다시 살아나기 위해선 "진짜 죽어야 살아날 수 있다"고 단언했다. 그것도 재수가 좋을 경우로 한정시켰다.

지난 19대 총선 불출마 선언을 했던 김 전 의장은 '내가 죽을 테니 후배 정치인은 살아라' 하는 이런 자세가 필요한데 '난 잘못한 게 없다'는 식이라며 "국민 심판을 서운해 말고 겸손하고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김 전 의장과의 일문일답.

―한국당을 비롯한 보수진영이 힘든 시기인데 과거 천막당사 시절과 비교해 한국당에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당시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으로 정말 위기였는데 천막당사 시절 나는 사무총장이었다. 박근혜 대표가 초인적으로 돌아다니며 40석도 어렵다는 것을 121석으로 만들었다. 그때 나는 박근혜에게 '인당수에 빠지라'고 했다. 뛰어내리면 두번째로 내가 가겠다고 할 정도였다. 죽겠다는 각오 없이 안된다. 정치는 죽어야 산다. 그것도 재수 좋으면. 침체기에 빠질 때 연꽃 탈 확률이 어딨냐. 내가 죽어야 다른 사람이 산다. 한국당이 이걸 보여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번에도 국민들의 심판을 수용하지 않으면 다음 선거는 희망이 없다.

―한국당 혁신비대위가 출범하는데 조언을 한다면.

▲비대위원장이 어려운 시기에 맡았지만 잘할 수 있도록 소속 의원들과 당원들이 도와줘야 한다. 비대위원장을 시켜놓고 '너는 너, 나는 나'대로 하면 안된다. 비대위원장은 한국당이 가야 할 올바른 길을 분명히 제시해야 한다. 힘들어도 불가능한 것은 없다. 야당이 이렇게 지리멸렬하면 대한민국 정치는 살아나지 못한다. 극히 일부 사람들이 유신시대적인 일방통행을 하려 하는데 그것은 정치가 아니다. 민주주의는 항상 시끄럽다. 일탈행위 없이 룰 안에서 지켜가면서 정치를 하면 된다.

―후반기 국회에서 개헌 논의가 다시 나올 듯한데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생각은.

▲왜 개헌을 해야 하나. 대통령 권한이 너무 커서 3권의 균형추가 무너졌다. 임기 초반에는 사법부, 입법부가 그냥 대통령 밑에서 쩔쩔매고 야당은 발목잡기 외에는 할 게 없다. 그러니 국회 인식도 나빠진다. 결국 구조적 문제는 헌법상 대통령 권한이 크다는 것이다. 임기 중반을 기점으로 새로운 대권후보 눈치를 보니 정권이 흐트러지는 것이다. 결국 임기 중반을 넘기면 식물형 대통령이 된다. 정책 지속성과 유연성, 탄력성을 갖추자는 것인데 문재인 대통령의 안은 근본적인 취지가 잘못됐다. 핵심은 대통령 권한 줄이기다. 그게 없으면 개헌은 의미가 없다.

―갈곳 잃어 난파 위기에 처한 보수세력에 한 말씀만 해준다면.

▲조금 냉소적으로 우리나라 정치에는 보수 같은 보수가 없고, 진보도 진보 같은 진보가 없다. 정당이나 정치인 모두 별로 호감이 안 간다. 또 하나 더 말하자면 보수는 자기가 지켜야 할 가치를 지켜야 한다. 그런데 지금 보수가 지킬 가치가 있는가. 보수는 그동안 선배들이 쌓아올린 것 위에서 낮잠만 자고 있었다.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이걸 지키기 위해 보수라는 사람들이 어떤 노력을 해왔나. 과일만 따먹고 덕만 봤지. 가만히 있는다고 시장경제가 활성화되나. 일각에서 우려되는 대목이 있으면 이론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몸으로 처절한 각오와 투쟁이 있어야 하는데 뭘 했나.

―보수 정치인들이 부족한 게 뭔가.

▲애국심과 도덕성도 부족하다. 애국심과 도덕성은 철저히 무시하고, 정치는 아무나 한다고 생각한다. 소위 '빽'만 있으면 된다고 하는데 이러면 안된다. 내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수업이라고 할지, 단련과정을 거쳤는지 돌아봐야 한다. 힘있는 놈, 돈 좀 있는 놈 위주로 판을 치면 안된다. 플라톤도 여러 훈련을 거쳐 50세가 넘어 정치를 했다. 신념 없이 아무나 정치를 해선 안된다.

―백범이 현 시대를 관통하며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지금 젊은이들이 있는 시대는 김구의 시대와는 완전히 다르고, 내가 있던 시대와도 다르지만 김구의 사상과 정신이 자극제로 작용해 정신적 자양분이 돼야 한다는 생각이 백범일지를 읽을수록 더해졌다. 백범은 너무나 큰 그릇이다. 나 스스로도 이분을 닮기에는 너무나 부족하다는 생각을 한다. 백범의 인생은 소설보다도 훨씬 흥미진진하고 어떤 영화보다 스펙터클하다. 많은 독립투사들이 김구 선생을 보고 "내 죽을 곳을 안내해달라"며 찾아왔다. 평범한 인생을 살기 원했던 김구는 시대가 키웠고, 독립운동만으로도 먹고살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버텼다. 그런 상황에서 오늘의 청년들이 배워야 할 게 많다.
이 나라는 선열들의 피와 눈물, 땀으로 생긴 것이다. 그만큼 이 나라는 소중하다.
입시 위주 교육에 찌든 청년들이 공동체 일원으로서 공동체를 지켜나가기 위해 무엇을 할지 김구를 통해서 보고 읽고 느껴야 한다.

[특별인터뷰] 김형오 전 국회의장 "보수의 몰락.. 국민심판 수용 안하면 다음 선거도 희망 없다"


△72세 △경남 고성 △14, 15, 16, 17, 18대 국회의원 △한나라당 사무총장 △한나라당 인재영입위원회 위원장 △한나라당 원내대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부위원장 △제18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백범김구선생 기념사업협회 회장
hjkim01@fnnews.com 김학재 심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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