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데스크칼럼]트럼프의 기이한 협상

최진숙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7.19 17:32

수정 2018.07.19 17:32

[데스크칼럼]트럼프의 기이한 협상

지난 16일 핀란드 헬싱키 대통령궁에 나란히 모습을 드러냈던 이 시대 최강 '스트롱맨' 두 명의 지금 상태는 극과 극일 것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크렘린궁에서 그날 동영상을 무한 반복재생하며 박장대소하고 있을 수 있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회담 후 직언을 서슴지 않았던 존 켈리 비서실장의 경질을 고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봐도 그날의 두 남자는 여러모로 비교가 된다. 첫 등장부터 달랐다. 가볍게 팔을 흔들며 경쾌한 표정이었던 푸틴, 이와 달리 트럼프는 세상 근심을 모두 안고 있는 얼굴이었다. 사실상 '미 정보기관보다 푸틴을 더 믿는다'로 해석될 트럼프의 발언은 당시 그의 컨디션에선 자연스러웠던 게 아닌지 의심도 간다.


"트럼프와 관련된 낯뜨거운 물증이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푸틴의 반응은 가장 푸틴스러웠다. 있다, 없다를 끝까지 말하지 않았던 그는 여러 말로 둘러댔지만, 결론은 "모르겠다"로 볼 수 있다. 푸틴은 이 순간이 너무도 즐거웠을 것이다.

트럼프는 회담 후 전용기를 탈 때만 해도 자신이 무슨 말을 한 것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는 외신 보도도 나온다. 백악관으로 돌아와 비로소 '최악의 멍청이'라는 원색적 비난을 확인하고서야 그는 "실수였다"며 말을 바꿨다.

"독일은 러시아의 포로" "EU는 적"이라며 미국의 오랜 동맹국을 향해 맘껏 독설을 날린 뒤 푸틴을 만나러 가던 길. 자칭 '협상의 달인' 트럼프가 목표로 한 건 무엇이었을까. 푸틴과의 만남은 트럼프가 원했던 것이고, 푸틴은 사실상 수락하는 형식이었다. 둘은 통역만 데리고 2시간여 단독회동을 했다. 하지만 회견 결과를 보면 트럼프는 제대로 얻은 것도, 확인한 것도, 약속받은 것도 없어 보인다. 서방세계 입장에선, 명백한 '음모의 나라' 러시아 차르 푸틴에게 트럼프는 너무 쉬운 상대였을 것이다.

트럼프가 쉬웠던 또 다른 정상은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다. 북 특유의 언행으로 취소 위기까지 갔던 회담을 편지 한 장으로 되살려낸 뒤 그는 딱 부러진 약속 없이도, 은둔의 공화국에서 세상 빛을 잡아챘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일관된 쪽은 아무것도 내놓은 것 없는 김정은이고, 쫓기며 계속 말을 바꾸고 있는 이는 트럼프다. 급기야 17일 트럼프 입에서 "비핵화 관련 시간, 속도제한을 두지 않겠다"는 말이 나왔다. 김정은과 가진 둘만의 싱가포르 독대에서 트럼프는 비핵화 관련 거의 말을 안한 것 같다는 북한 외교관 출신 태영호의 말이 맞는 건지 모르겠다.

푸틴.김정은과 가진 이 기이한 트럼프 회담을 보며 트럼프 협상의 본질을 다시 생각한다. 그는 그의 저서 '거래의 기술'에서 말했듯 거래 자체를 즐기는 사람이다. 그는 푸틴.김정은과의 만남 그 자체에 대단한 의미를 부여했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상대는 본능과 감으로 후려칠 수 있는 삼류 비즈니스 업계 종사자가 아니라, 정적을 쥐도 새도 모르게 없애는 현존 가장 혹독한 독재자들이지 않은가. 전략과 전술에 도가 튼 푸틴.김정은이 트럼프 뼛속까지 들여다보며 싱거운 승부로 생각했을 게 뻔해 보인다. 김정은과 만남 전 "1분이면 그의 진심을 안다"고 했던 이가 트럼프였다.
치밀함, 공격력, 방어력 총체적 부실 상태였던 트럼프의 거래가 우리에겐 뼈아프다. 그의 외교 오른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역시 다른 것 같지 않다.
이럴 때 우리의 협상술은 부디 깨어있기를. 혼돈의 트럼프 시대, 갈 길이 멀어 보인다.

jins@fnnews.com 최진숙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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