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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논단] 적폐청산을 넘어 비전을 말하자

안삼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7.25 17:25

수정 2018.07.25 17:25

[fn논단] 적폐청산을 넘어 비전을 말하자

시대가 바뀌면 있던 단어도 사라지고 없던 단어도 생겨난다. 어떤 말이 생겨나고 없어지는지를 살펴보면 그 시대의 상황을 알 수 있다. '동무'라는 정겨운 말은 공산당이 빼앗아갔고 '한겨레'라는 가슴을 울리던 말은 어느 신문사가 가져가버렸다. 대신 '헬조선' 'n포시대' '적폐' '갑질' 등이 생겨나 이젠 보통명사처럼 쓰인다. 이렇게 정과 나눔의 상징어들이 사라지고 불만족과 좌절, 대결과 갈등을 함축하는 단어들이 등장한 것은 우리 사회가 그만큼 살기 어려워지고 무엇인가를 대상으로 풀지 않으면 참기 어려워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특별히 이번 정부 들어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적폐와 갑질이다. 부정적인 의미를 가진 단어일수록 어감이 강하고 사람들을 흥분시키는 힘이 있다.
적폐는 과거의 잘못된 것들을 말하고, 갑질은 무엇인가 가진 자들의 횡포를 말한다. 연일 계속해서 적폐라고 보도되는 내용들을 보면 그간 해도 해도 너무했구나 하는 일들이 대부분이다. 대통령이 나서고 전 부처가 전담반을 만들 만하다. 지난 정부의 핵심 공직자들이 대부분 구속되고 법정에 서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나라도 아닌 나라에서 살아온 것 같고, 나도 무엇인가 공범인 것 같은 죄의식을 느끼게 된다. 더구나 갑질하는 현장의 모습과 목소리가 방송되는 내용들을 보면 같이 분노하다가 나도 쥐꼬리만 하게 가진 권한으로 갑질한 것은 없는지 되돌아보며 반성하게 된다. 이렇게 적폐와 갑질을 하나씩 찾아내 온 국민에게 알려서 의식을 깨우고 이 정부 스스로는 이런 일들이 반복되지 않겠다는 선한 의도는 우리나라의 격을 높여줄 것이라 동의한다.

하지만 이 작업이 이런 식으로 언제까지 지속되는 것이 타당한지는 이제 생각해봐야 할 시점이다.

정부가 나서서 적폐청산과 갑질근절 뉴스를 생산하다 보니 매일 언론이 이를 받아쓰고 정작 이번 정부가 만들려는 미래 사회의 모습은 어딘가로 감춰져버렸다. 적폐라고 보도되는 일들 중에서 이런 일도 권력남용인가 갸우뚱하게 만드는 것들도 끼어 있는 것을 볼 때는 이번 정부가 일하는 사람들이 자율적이고 창의적으로 주도할 수 있는 일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몰라 하게 할 수도 있겠다 생각하게 된다. 어쩌면 이 작업의 뒤끝에는 정부의 의도와는 달리 누구도 희생적으로 일하려 하지 않고 가진 자들은 베풀려 하지 않는 적막한 사회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적폐청산과 갑질근절은 반드시 지속되어야 한다는 데 이론이 없다. 그러나 이제는 이 정부가 미래 사회의 모습을 제시하고 그런 사회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면서 모든 국민들의 동참을 이끌어내는 방법에 더 힘을 써야 한다.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목표가 분명하고 시행하는 정책이 일관성이 있으면 적폐라는 것이 생겨나지 않을 것이며 어떠한 갑질도 용인되지 않을 것이다. 이 정부도 이제 적폐를 만들어갈 수 있는 시점을 지나고 있음과 지난 일 년 동안의 청산과 근절 작업 과정에서 국민들이 얼마나 높은 기준을 이 정부에 요구하게 되었는지 깨달아야 한다.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이제 청산과 근절을 넘어서서 비전을 보이라!

한헌수 숭실대 전자정보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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