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장칼럼]

반올림의 '탈 삼성'을 축하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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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삼성전자 출입을 시작했다. 당시 삼성전자 기자실이 있던 서울 서초사옥으로 출근한 첫날이었다. 지하철 2호선 강남역에서 8번 출구로 나오자 마천루 같은 서초사옥이 '여기가 삼성'이라고 말하는 듯했다. 하지만 몇 걸음 못 가 세상에서 가장 남루한 천막이 시선을 잡았다. 싸이의 강남스타일로 세계적 명소가 된 강남역의 이면. 뉴스에서 봤던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이었다.

반올림은 측은했다. 회사 때문에 딸을 잃었다는 아버지의 울먹임은 절절했다. 반올림의 목표는 삼성의 사과와 보상이었다. 그러나 목표를 이룬다 한들 결코 치유되지 못할 슬픔이었다. 백혈병을 둘러싼 반올림과 삼성의 사실관계 공방은 11년이나 계속됐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으로도 비유됐다. 인간에 대한 연민은 여론을 만들었다.

반올림이 이상하게 보인 적도 있었다. 피해자보다 반올림을 움직이는 세력들이 눈에 띄기 시작하면서다. 믿고 싶지 않았지만, 이른바 '시위꾼'이라는 사람들이 더러는 그들 주변에서 맴돌았다. 사태가 장기화되고 정치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더 그랬다. 반올림 희생자 중 다수가 다른 조직을 결성해 나간 것도 이런 이유라고 들었다.

'대기업인데 추하다.' 여론은 점점 악화됐다. 삼성은 고민에 빠졌다. 삼성은 직업병 발병원인이 충분히 규명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글로벌 기업의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입은 삼성으로선 문제해결이 급선무였지만 덜컥 보상할 수도 없었다. 자칫 사례가 돼 집단소송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와 '통 큰 삼성'을 바라는 국민의 기대가 엇갈렸다.

그런데 당혹스러울 정도로 갑자기 문제가 해결됐다. 양측은 10월쯤 나올 조정위원회의 중재안을 무조건 수용키로 했다. 재계에서는 이번 타결의 배경에 이재용 부회장의 지시가 있었을 것으로 관측했다. 또 호사가들은 "대법원 재판이 남아서 저런다"고 깎아내렸다.

어쨌든 이 부회장의 결단 없이는 해결이 힘든 게 사실이다. '카더라' 따위의 배경은 접어두자. 10여년 묵은 문제가 단박에 해결된 것만도 충분히 환영할 일이다. 반올림 사건은 한국 산업사에 기록돼야 한다. 근로자 안전에 대한 경종, 산업재해 소명에 대한 절차, 기업의 보상과 타협 과정까지 삼성과 반올림은 우리 재계가 참고할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반올림은 지난 25일 1023일 만에 천막을 거두었다.
거슬러 올라가면 반올림 천막농성은 2015년 10월 7일부터 시작됐다. 반올림과 나는 공교롭게도 삼성 출입을 같이 시작한 '동기'다. 늦었지만 반올림이 지금이라도 '탈 삼성'한 것에 축하하고 싶다.

km@fnnews.com 김경민 산업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