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168명 법안 서명, 뿌리깊은 공생관계가 배경

법원, 지역구 민원창구 역할
선거법 재판 등으로 저자세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이끈 상고법원 설치법 로비에 국회의원 168명이 법안 발의단계부터 서명을 한 배경에는 국회와 사법부의 음성적 공생 관계가 상당히 뿌리깊었음을 의미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행정부나 사법부를 견제해야 할 현역 국회의원들이 이처럼 쉽게 법원 로비에 움직일 수 있었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정도로 요약된다.

첫째는 법원이 국회의원들의 지역구 민원창구 역할을 했다는 점이 지적된다.

특히 법원행처가 7월 31일 공개하며 드러난 '법사위원 접촉일정 현황'(2015년 3월 24일), '상고법원 입법을 위한 대국회 전략'(2015년 5월 6일), '상고법원 법률안 11월 정기국회 통과 전략'(2015년 11월 2일) 등의 문건에선 이 같은 여러 정황도 엿볼수 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상고법원 설치를 위한 로비에 지방 법원 조직의 지역구 유치 등을 미끼로 의원들을 관리한 정황도 이번에 드러났다.

로비 목적으로 당시 포섭된 거물급 주요 정치인을 통해 찬성 의원들 숫자를 늘리고 로비가 통하지 않던 반대 의견의 정치인들과도 선이 닿는 학연.지연을 총동원했다.

둘째는 선거법이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재판 중이거나 잠재적으로 재판을 받을 수 있는 의원들이 자신들의 생살여탈권을 쥔 법원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는 구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의원 가운데는 재판에서 1, 2심에서 상실형(벌금 100만원 이상)을 받고도 대법원 판결에서 감형(100만원 이하)되면서 기사회생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동안 주로 재판 중인 여야 의원들 사이에선 같은 혐의인데도 누구에겐 더 유리하고 덜 유리한 게 아니냐는 공정성 문제도 자주 지적되곤 했다.

물론 이 같은 시비가 더 크게 불거지지 않은 것은 최소한 대법원의 판단이 법과 국민 앞에 공정하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 공개된 법원행정처 문건은 이 같은 최소한의 믿음마저 의문을 가지게 만드는 배경이 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위안부 재판 문제다. 박근혜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와 합의한 직후인 2016년 1월 초 작성된 법원의 문건은 재판 전 '각하' 또는 '기각'으로 미리 결론을 내렸다.

한명숙 전 총리의 대법원 판결 과정을 두고선 언론을 동원해 여론을 부추기고 재판시기를 당기려 한 정황도 드러났다.

이번에 문건 곳곳에서 드러난 문제점은 특히 국회뿐 아니라 청와대까지 입법로비의 대상이 된 점이 발견되면서 충격을 주고 있다.
사법부가 입법.행정부를 사실상 쥐락펴락한 사법 농단의 총체적인 민낯이 공개되면서다. 입법부도 여야를 막론하고 이번 사태에 대해선 변명을 할 처지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여당의 한 중진 의원은 "그동안 법원에 각종 민원을 하고 법원이 국회의 단순 민원창구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이렇게까지 문제를 제기할 것은 아니다"라는 입장을 보였다.

cerju@fnnews.com 심형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