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대기업

인력 빼가고 기술 훔치고.. 中 공세에 ‘LCD 신화’ 깨졌다

권승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8.05 17:18

수정 2018.08.05 17:18

[LCD 코리아의 쇠락] <上> 기업도, 정부도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중국 디스플레이 굴기 선언.. 빚내서 보조금 지원해주고
기술 빼오면 연봉 2배 제시.. 결국 작년 中 업체 1위 석권
국내 업계 신기술 개발 매진.. 정부 지원 적어 차별화 난항
인력 빼가고 기술 훔치고.. 中 공세에 ‘LCD 신화’ 깨졌다


한국 액정표시장치(LCD) 산업이 빠르게 침몰하고 있다. LCD는 메모리 반도체와 함께 국내 수출을 떠받치던 주요 축이다. 하지만 디스플레이 패널 수출액은 매 분기마다 쪼그라들고 있다. 한국은 중국에 LCD 강국 자리를 내줬다. 지난해부터 주요 업체 실적, 시장조사 결과 등을 통해 그 결과가 명백하게 드러나고 있다.

중국의 디스플레이 굴기 조짐은 이미 포착된지 오래다.
국내 업계는 LCD를 대신할 차세대 디스플레이 개발을 통해 새로운 돌파구를 찾으려했다. 하지만 기술적 난이도와 높은 가격 등으로 인해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5일 업계에 따르면 LG디스플레이는 올해 상반기 약 3264억원의 영업적자를 봤다. 10년 전인 지난 2008년 상반기에는 21.6%의 영업이익률을 냈던 LG디스플레이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 LCD 산업은 전성기를 누렸다. 디스플레이 1위였던 일본을 제치고 1위 자리를 굳힌 데다가 중화권 업체들의 추격도 거세지 않았다. 2008년 상반기 디스플레이 패널 수출액은 129억4000만달러로 상반기 기준 사상 처음으로 100억달러를 돌파했다.

현재 LCD 업계를 집어삼키고 있는 징둥팡(BOE)의 LCD 패널 양산은 그로부터 2년 뒤인 2010년 하반기부터 이뤄졌다.

■알고도 당한 국내 업계

국내 LCD 산업의 역사는 삼성전자와 LG디스플레이가 써왔다. 한국이 LCD 산업에 뛰어든 건 1990년대 중반이다. 당시 세계 디스플레이 시장은 샤프, 도시바 등 일본업체들이 장악한 상태였다. 기술 격차도 10년 이상 벌어져있었다.

국내 업체들은 경쟁업체와의 협업을 통해 추격에 나섰다. 삼성전자는 도시바와 연합해 샤프를 제친 데 이어, 지난 2004년에는 7세대 LCD 패널 생산을 위해 선발주자인 일본 '소니'와 협업했다. LG디스플레이도 일본 NEG와 합작했다.

정상에 올라선 국내 업체들은 중화권 업체들의 디스플레이 굴기를 경계했다. BOE가 지난 2003년 한국의 '하이디스테크놀로지'를 인수하면서 공격적인 확장에 나섰기 때문이다. 하이닉스는 유동성 위기 때문에 사업부 별로 쪼개져 팔렸다. LCD 사업부인 하이디스는 중국의 BOE에게 3억8000만달러에 인수됐다. 이 과정에서 하이디스의 기술 노하우가 통째로 BOE로 옮겨졌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두뇌 유출이 이뤄졌다. 그 결과 BOE는 2010년 하반기 무렵부터 제품 양산에 성공했다.

디스플레이 산업의 인력 유출 문제는 현재 진행형이다. 서울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지난달 뒷돈을 받는 조건으로 국내 업체들의 첨단기술을 중국으로 빼돌린 한국인을 검거하기도 했다. 피의자는 이 과정에서 현재 연봉의 2배에 달하는 연봉과 명절 보너스 수백만원, 주거비, 자동차, 항공권, 전용 통역인 등을 제공 받았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최근 중국으로 이직한 책임급 직원을 상대로 법원에 전직 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기도 했다.

■정부는 속수무책

지난해 BOE는 결국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를 모두 꺾고 LCD 업계 1위를 거머쥐었다. 국내 업체들이 끝을 모르고 추락하는 LCD 패널 가격에 신음하고 있던 와중에 추월에 성공한 것이다.

위츠뷰에 따르면 올해 1월 220달러였던 LCD TV용 패널 평균 가격은 지난달 176달러로 떨어졌다. BOE는 지난 1.4분기 9%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했다.

시장조사업체 DSCC는 중국 패널업체가 중국의 보조금, 낮은 임금 등으로 유리한 사업 환경을 유지했다고 분석했다.


익명을 요구한 디스플레이 업계 한 인사는 "삼성이나 LG가 투자한다고 정부가 돈 대주는 거 본 적이 있느냐"며 "중국이 공정무역을 위반하고 있다"고 불만을 표했다. 그는 "중국 경제가 발전 단계에 있던 과거에는 그럴 수 있다 쳐도 지금은 아니다"라며 "일자리가 복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방정부가 밑빠진 물독처럼 계속 돈을 대주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디스플레이 업계 인사 역시 "정부도 중국 정부에게 문제 제기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으로 초토화된 전례가 있지 않나"라고 말했다.

ktop@fnnews.com 권승현 기자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