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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우리가 먼저 대북 제재망 구멍 낼 건가

파이낸셜뉴스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8.06 16:42

수정 2018.08.06 16:42

북한 석탄 실은 배 드나들어.. 종전선언 조바심 낼 때 아냐
북한 비핵화를 견인하기 위한 대북 제재망에 연이어 구멍이 뚫리고 있다. 3일(현지시간) 유엔 안보리 산하 대북제재위 전문가 패널이 안보리에 제출한 보고서에 낱낱이 적시된 내용이다. 북한이 올 1~5월 89건의 불법 환적으로 많게는 140만배럴의 정제유를 조달했다는 게 대표적 사례다. 안보리의 최대 허용치(연 50만배럴)를 넘기면서 이 기간 중 북측이 핵물질 생산과 미사일 개발을 계속했다니 사태는 자못 심각하다.

지금 북한의 비핵화 프로세스는 진도가 나가긴커녕 역주행 중이다. 미·북 협상의 전면에 나섰던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이 같은 상황을 실토했다.
얼마 전 미 의회에서 북한이 핵분열성 물질을 계속 생산하고 있다고 증언하면서다. 더욱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친서를 주고받으며 기대를 모았던 싱가포르의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도 이렇다 할 결실 없이 막을 내렸다. 의례적인 폐막 의장성명 중 북핵 부문에서 지난해엔 포함됐던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 비핵화(CVID)'라는 레토릭마저 빠지면서다.

이런 교착상황은 판문점선언이나 미·북 정상회담 당시 어느 정도 예견됐다. 비핵화 일정표도 없는 허술한 합의가 화근이란 뜻이다. 비핵화라는 핵심 어젠다가 종전선언 논란에 밀려나고 있는 저간의 사정이 그 방증이다. 미국은 이 같은 논점 이탈을 막을 마지막 안전장치인 대북제재의 고삐를 다시 죌 참이다. 문재인정부가 종전선언이 늦어질까 조바심을 내며 한·미 공조가 흔들리는 인상을 줘선 안 될 시점이다.

그런 맥락에서 걱정스러운 대목이 적잖다. 무엇보다 러시아산으로 위장한 북한산 석탄 수입에 대한 정부의 모호한 태도가 문제다. 이미 세계적 뉴스의 초점이 된 마당에 그 석탄을 실은 배들이 무시로 드나들게 해 미국 등 국제사회의 불신을 자초했으니 말이다.
청와대는 얼마 전 4·27 판문점선언 100일에 즈음해 "국민들이 전쟁의 공포에서 완전히 벗어나 평화가 일상화됐다"고 자찬했다. 하지만 북핵을 머리에 인 평화라면 '묘지 위의 평화'를 꿈꾸는 것만큼이나 허망한 노릇이다.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인 우리가 먼저 안보리의 대북제재 그물망을 훼손해선 결코 안 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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