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중로]

페미니즘 폭풍 속 남과 여

지령 5000호 이벤트
이미 종영된 TV프로그램 중에 '숲속의 작은집'이라는 다큐멘터리(?)가 있다. 자발적 고립 다큐멘터리가 이 프로그램의 모토(motto)다. 사실 일부 연출된 측면이 있어 완벽한 의미의 다큐멘터리는 아니다. 하지만 프로그램 속 내용 중 다큐멘터리적인 요소가 적지 않다.

방송PD 중 최고의 주가를 올리는 나영석이 연출하고 소지섭과 박신혜, 박신혜와 소지섭이라는 국내 최상급 남녀 배우가 출연했다. 연출자 및 출연진의 명성과 최근 관찰형 TV프로그램이 인기라는 점을 감안하면 시청률 측면에서 이 작품은 범작(凡作)에 속한다는 평가다. 하지만 제작의도와는 다른 측면에서 쏠쏠한 재미와 나름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소지섭과 박신혜, 박신혜와 소지섭이라고 출연진의 이름을 두 번 쓴 이유는 남녀라는 선입견에서 벗어나 가능하면 객관적으로 보려했다는 의미라는 점을 미리 밝혀둔다.

이 프로그램의 홈페이지에는 '숲속의 작은집'을 "전기, 가스, 수도는 없지만 당신의 삶에 꼭 필요한 것들로 채워진 '최소한의 집'. 그곳을 찾은 피실험자에게 주어진 실험을 통해 '행복'을 찾아가는 특별한 여정"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복잡한 세상과 멀리 떨어진 장소에서, 문명의 이기(利器)를 최소화한 채 살아가는 남과 여. 자연으로 돌아가 행복을 찾아가는 과정을 카메라의 눈이 따라가는 구조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의 소개에서 밝힌 '행복을 찾아가는 여정'은 사실 잘 느껴지지 못했다. 당초 제작의도와는 다를지 모르지만, 갑자기 주어진 환경 속에서 남과 여가 적응해 가는 과정에 차이가 있었다는 점이 나에게는 더욱 흥미로웠다. 화면에 비쳐진 영상마저도 정교하게 연출된 것이거나 출연자의 개인적 성향 차이라고 치부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먼저 남성 출연자는 고립된 환경, 기상-조리-식사-휴식-취침 등으로 이어지는 단조로운 생활 패턴, 넘치는 시간 등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따분해 하거나 어떤 곳을 응시한 채 덧없이 시간을 흘려보내는 장면이 상대적으로 많다. 하지만 여성 출연자의 행동은 다르다. 꾸준히 무엇을 하고 심심함과 단조로움 속에서도 계속 재미를 찾아낸다.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미리 준비하고 실행해 나가며 소소한 것에게도 의미를 부여한다. 갑자기 주어진 고립된 상황에 남자보다는 잘 적응해 나가는 것으로 느껴진다.

사회학적 측면에서 남성과 여성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유사 이래 이 문제에 대한 연구나 주장은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사석에서 조차 각자 나름의 직·간접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개인적인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개별적이고 단편적인 모습을 보편화할 경우 오류가 발생한다. 하지만 적어도 다큐멘터리 형식을 띤 이 프로그램에서 남성과 여성은 변화에 대한 적응력에 차이를 보인다. 마치 천천히 흘러가는 과거가 남성의 시대였다면 급속히 변하는 미래 환경 속 주인공은 여성이 될 수 있다는 의미처럼.

yongmin@fnnews.com 김용민 산업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