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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규제 풀라는 대통령, 거꾸로 가는 현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8.08 17:05

수정 2018.08.08 17:05

"스타트업을 범법자로 취급" 편의점 상비약 교체도 못해
인터넷전문은행에 한해 은산분리 규제를 풀자는 문재인 대통령의 7일 제안이 큰 울림을 낳고 있다. 지지층은 공약 파기라고 반발할 정도다. 반면 보수 자유한국당은 "환영한다"는 논평을 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이제 겨우 첫발을 뗐을 뿐이다. 규제혁신은 대통령이 나서도 쉽지 않은 작업이다. 혁신이 기득권의 벽에 가로막힌 사례는 한국 사회에 차고 넘친다.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은 8일 불만으로 가득찬 성명을 발표했다. "한쪽에선 스타트업을 혁신성장의 주역처럼 치켜세우고, 다른 한쪽에선 질서와 안전을 해치는 범법자 취급을 한다"는 것이다. 최근 국토교통부와 서울시는 승차공유 서비스에 잇따라 제동을 걸었다. 전세버스 승차공유 서비스, 대리운전과 렌터카를 결합한 서비스는 발목이 잡혔다. 국토부는 여객운수사업법 위반을 문제 삼았다. 현행 법조항을 들이대면 공유경제 신사업은 설 자리가 없다. 우버형 공유경제가 유독 한국에서 발을 붙이지 못하는 이유다.

편의점에서 팔리는 상비약을 바꾸려던 시도도 물거품이 됐다. 보건복지부는 8일 제6차 안전상비의약품 지정심의위원회를 열어 소화제 2종을 빼고 대신 제산제(갤포스)와 지사제(스멕타)를 넣으려 했다. 지금 편의점에선 해열진통제, 감기약, 소화제 등 모두 13종이 팔린다. 하지만 약사회의 벽은 견고했다. 복지부는 다음 회의 일정도 잡지 못했다. 지정심의위는 지난해 3월 박근혜정부 때 출발했지만 지난 1년 반을 허송세월했다. 지난해 12월 5차 회의에선 약사회 측 위원이 자해하는 소동까지 있었다.

의료개혁은 기득권의 저항이 철옹성 같은 곳이다. 박능후 복지부 장관은 지난달 중순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를 좀 더 넓힐 수 있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여당과 시민단체가 들고 일어나자 "잘못 전달됐다"며 발을 뺐다. 한국은 원격의료의 기반인 정보통신기술(ICT)이 세계에서 가장 앞선 곳이다. 그러나 의사들의 조직적인 저항에 막혀 옴짝달싹 못하는 형국이다.

문 대통령은 7일 인터넷은행 정책을 펴는 금융당국에 대해 "금융권이 자칫 기득권과 낡은 관행에 사로잡히는 일이 없도록 해달라"고 당부했다.
기득권은 금융권만의 문제가 아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규제는 암덩어리'라는 섬뜩한 말까지 했으나 끝내 기득권의 벽을 깨지 못했다.
문 대통령이 진심으로 규제를 혁파하려면 단단히 맘을 먹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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