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피플일반

매주 두 번 감옥 가는 나는, 치과의사입니다

최용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8.09 17:18

수정 2018.08.09 18:10

[감동시리즈-우리함께] ⑥ 18년째 창원교도소로 왕진 가는 박윤규씨
용 문신 새겨진 우락부락한 사내도 이 다 빠져 음식 못 씹는 늙은 죄수도 나에겐 똑같은 환자입니다.
최소한의 치료비는 다시 감옥을 위해… 내가 넣어준 꽁꽁 언 생수로 이곳 재소자들은 여름을 버팁니다.
경남 창원에서 치과를 운영하는 의사 박윤규씨는 매주 두 번 창원교도소로 왕진을 간다. 19세 때 사고로 한쪽 다리를 잃은 그는 "덤으로 주어진 두번째 삶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위해 살겠다"고 다짐했다.
경남 창원에서 치과를 운영하는 의사 박윤규씨는 매주 두 번 창원교도소로 왕진을 간다. 19세 때 사고로 한쪽 다리를 잃은 그는 "덤으로 주어진 두번째 삶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위해 살겠다"고 다짐했다.

【 창원(경남)=최용준 기자】 어릴 적 치과를 싫어했던 건 드릴 소리나 알코올 냄새, 아픔 때문만은 아니었다. 의사가 입안을 들여다보는 건 내 속을, 다른 사람에게 내보일 수 없는 끔찍한 마음을, 누군가 알게 되는 기분이 들어서였다.
바보 같은 생각이지만 왠지 그랬다.

경남 창원에서 치과를 운영하는 의사 박윤규씨(53)는 매주 2회 경남 창원교도소에 왕진 간다. 그는 팔에 용문신이 새겨진 재소자의 입안을 본다. "어디가 아프세요?" "잇몸이 너무 아파요." 박씨는 재소자들의 검은 충치를 뽑는다. 그가 교도소에 오는 건 치료 때문만은 아니다. 재소자 마음속 어둠을 조금이라도 내몰기 위해서다.

교도소 진료는 오후 1시부터 3시까지다. 박씨는 하루 15명 정도의 재소자를 치료한다.
교도소 진료는 오후 1시부터 3시까지다. 박씨는 하루 15명 정도의 재소자를 치료한다.


■범죄자 입안을 보다

지난달 24일 오후 1시. 뜨거운 여름 열기가 쇠창살을 달굴 때 박씨와 창원교도소에 동행했다. 박씨가 교도소 진료를 시작한 건 지난 2000년부터. 왜 하필 교도소에서 의술을 펼치는 걸까. "기회가 돼서…." 박씨 대답은 거창하지 않다. 이가 다 빠져 음식을 씹을 수 없는 늙은 죄수를 위해 무료 틀니를 맞춰준다는 식이다.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라며 박씨는 웃는다.

3평(9.9㎡) 되는 교도소 진료실에서 재소자가 의자에 눕는 모습은 낯설다. 우락부락한 사내도 아이처럼 변한다. 다소곳하게 진료의자에 누워 손을 깍지 낀다. 여느 보통 사람처럼 아파한다. 박씨가 "오른쪽으로 음식 씹으시면 안돼요"라고 말하자 "정말 감사합니다"라며 재소자는 꾸벅 배꼽인사를 한다. "저번에 어떤 착한 일 하셨어요?" 박씨는 웃으며 재소자를 맞이한다. 진료가 끝나면 "착한 일 많이 하세요"라고 등을 두드린다. 살면서 어떤 선한 일을 했는지 그들은 떠올려본다. 재소자들은 "양보 많이 했어요"라고 말하거나 겸연쩍게 웃는다. 돌이켜 보면 초등학교 때 이후로 저런 질문을 들어본 적이 없다.

진료실로 재소자가 들어오면 험한 인상에 움츠러든다. 평범한 인상을 보면 죄명이 뭘지 궁금하다. 박씨는 "처음 교도소에 왔을 때 재소자를 보면 떨렸지만 이제 익숙해졌다"며 웃었다. 그는 "예전 슬쩍 죄명을 물었다가 재소자가 확 미워진 적도 있다. 이제는 아픈 환자로만 본다"며 "지금 이 순간만 보려 한다"고 말했다. 박씨는 지난해 창원교도소 주치의도 됐다. 교도소도 재소자 인권을 위해 치료에 적극 협조한다.

진료가 끝나면 박씨는 덕담처럼 "착한 일 많이 하세요"라며 재소자들의 등을 두드린다.
진료가 끝나면 박씨는 덕담처럼 "착한 일 많이 하세요"라며 재소자들의 등을 두드린다.


■치료비 전액은 교도소에 환원

교도소 진료는 오후 1시부터 3시까지다. 박씨는 간호사 3명을 대동한다. 하루 15명 정도 치료한다. 대기하는 환자가 수십명이다. 임플란트, 틀니 등 박씨는 2시간 동안 쉬지 않고 일한다. 이마에 땀이 맺힌다. 밀린 환자를 한 사람이라도 더 치료하기 위해서다.

평균보다 낮은 진료비를 받는다. 처음에는 무료 진료였지만 워낙 재소자가 많아 유료로 전환했다. 재소자 치과 진료로 얻은 수익은 전액 교도소에 환원한다. 교도소 안 화단을 가꾸고, 단돈 만원도 없는 가난한 재소자에게 영치금을 넣어준다. 박씨는 "더운 여름날 교도소에 에어컨은 없고, 밤이면 선풍기도 제대로 못 켠다"며 "모든 재소자에게 매주 두세 번씩 얼음생수를 기부한다"고 설명했다. 창원교도소 재소자는 1400여명이다.

고 신영복 선생은 저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여름 징역살이를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여름 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사람을 증오하게 합니다. 좁은 잠자리는 옆사람을 단지 37℃의 열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옆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나가는 겨울철의 원시적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 중의 형벌입니다."

교도소에 깔린 무더위는 죄의 삯일 수 있겠다. 하지만 또 다른 폭력을 낳기도 한다. 바람 한 점 안 부는 감옥에서 재소자 간 싸움은 여름에 빈번하다. 창원교도소 재소자들은 박씨의 얼음물로 여름을 난다. 그들은 꽁꽁 언 물을 가슴에 안고 화를 가라앉힌다.

■교도소는 무엇을 하는 곳인가

교도(矯導). 바로잡을 교, 이끌 도가 합쳐진 단어다. 교도소는 처벌과 동시에 교화가 목적이다. 한번 범죄의 길을 걸으면 쉽게 헤어나오지 못한다. 하지만 뉘우치려는 사람도 있다. 박씨에게 편지를 보낸 재소자들이다. 손으로 쓴 감사편지가 수십 통이다.

재소자 A씨 편지. "건강은 먹는 데서 시작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길 수 있는 치아가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닐는지요. 원장님은 이곳 교도소 형제들에게 건강과 행복한 인생을 안겨주는 고마운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덤으로 주어진 삶을 베풀며 살아야겠다고 하신 말씀에 공감이 가면서도 잘 되지 않을 땐 원장님을 생각하면서 다시금 재충전하며 살겠습니다."

재소자 B씨 편지. "사회에서 큰 죄를 짓고 이렇게 범죄자라는 저의 신분이 정말 부끄럽습니다. 색안경을 끼고 볼 만도 하지만 선생님께서는 죄 많은 저에게까지 사랑의 마음과 호의를 베풀어 주시어 어떻게 신세를 갚아야 할지 감사할 따름입니다. 평생을 지은 죄에 대하여 사죄하며 살 것입니다." 재소자 편지에는 가시밭길 삶을 쏟아내고 후회하고 반성하는 내용이 가득하다. 박씨는 편지를 소중하게 서가에 모은다. 그는 "대장암에 걸린 재소자에게 무료 틀니를 해준 적 있다. 그가 표현하는 감사는 사회에서 행해지는 것과는 강도가 다르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사람에게 진료는 남다른 것 같다"고 전했다. 박씨 병원에는 재소자가 보내준 선물이 많다. 손으로 쓴 불경, 목공을 하는 재소자가 직접 만든 독서대, 박씨 초상화 등 모두 진료비 대신 받은 것들이다.

■축구 연장전에 들어간 것처럼 산다

박씨가 재소자를 진료하고 창원교도소에 환원하는 금액은 한 해 4000만원 정도. 인도네시아 등 해외 의료봉사도 자비로 1년에 4번씩 간다. 돈을 모으기보단 다른 사람을 위해 쓰려 한다. 그간 선행으로 2016년 대통령표창 등 여러번 상을 받았다.

박씨는 "축구 연장전을 뛰는 마음처럼 산다"고 말한다. 그는 19세에 지금은 없어진 철도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철도청 서울기관차 사무소에서 일을 시작했다. 4개월 만에 열차 동력차에 치여 오른쪽 무릎 아래를 절단했다. 죽었다 다시 살아난 거나 다름없다. 덤으로 주어진 삶. 그가 자신을 소개하는 말이다. 박씨는 "그 사고로 인해서 내가 죽었다면 모든 게 끝났을 거다. 다행히 살아있어서 연장을 하고 있는 셈"이라고 담담히 말했다. 새로 생긴 삶을 그는 허투루 살 수 없다고 생각했다. 박씨는 "나만을 위한 삶이 아닌 남을 위한 삶을 살겠다. 스무살 때 그렇게 결심하고 다시 공부해 의대에 진학했다"고 설명했다.

박씨가 교도소에 가는 이유는 그 때문이 아닐까. 두 번째 삶. 교도소를 나간 이후 새하얀 두부를 먹는 것처럼 재소자들에겐 연장전이 기다리고 있다. 썩은 이를 뽑는 것처럼 박씨는 어두운 과거를 지나 새 삶을 나누려는 것만 같다.
그는 다시 '잘' 살아가는 방법을 재소자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junjun@fnnews.com 최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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