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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스트리트] 베이다이허(北戴河)

염주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8.15 16:37

수정 2018.08.15 16:37

베이징에서 동쪽으로 280㎞ 지점에 베이다이허(北戴河)가 있다. 발해만에 접한 아름다운 해변 휴양지다. 구역의 70%는 삼림으로 덮여 있고, 해양성기후의 영향을 받아 여름철 평균기온이 24.5도 정도로 서늘하다. 매년 여름 세계의 눈이 이곳을 주시한다. 중국 공산당의 진로를 결정하는 비밀회의가 열리기 때문이다.

올해도 당 원로들과 현직 수뇌부가 지난 4일부터 휴가를 겸해 이곳에 집결했다.
핵심 의제는 당연히 미·중 무역전쟁이다. 올여름 이곳의 분위기는 도광양회(韜光養晦)로 흐르고 있다. 도광양회는 '빛을 감추고 어둠 속에서 힘을 기른다'는 뜻이다. 개혁개방 선구자인 덩샤오핑의 유훈이다. 덩샤오핑은 1990년 무렵 중국 공산당이 외교분야에서 향후 100년간 이 지침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참석자들은 "우리가 트럼프 대통령을 과소평가했다"는 얘기들을 쏟아낸 것으로 전해진다. 대만 자유시보도 "원로들이 시진핑 주석의 정책방향과 미·중 무역전쟁 충격파에 불만을 표시했다"고 보도했다. 이들은 시 주석의 성급한 아시아·태평양지역 패권 추구가 미국을 자극했다고 보는 것 같다.

올해 비밀회의에는 각 분야에서 중국을 대표하는 과학자 62명이 초대됐다. 중국 지도부는 이들에게 신속한 기술자립을 촉구했다. 중국은 자신들이 촉발한 미국과의 패권 경쟁에서 승패를 결정짓는 핵심요인을 기술로 보고 있음이 분명하다. 시진핑은 중국 첨단산업 육성정책인 '중국 제조 2025'를 발표한 데 이어 핵심기술 국산화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최근에는 이를 직접 챙기기 위해 과학기술영도소조를 출범시켰다.

그러나 지난 4개월 동안 지속된 미·중 무역전쟁 초반전은 미국의 승리로 기우는 듯하다. 미국의 주요 경제지표들은 일제히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지만 중국은 그렇지 못하다. 특히 위안화 폭락세가 중국 경제의 장래에 대한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그럼에도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공세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승기를 잡은 김에 더 확실히 밀어붙이겠다는 의지가 역력하다.
덩샤오핑이 도광양회를 제시한 지 30년도 지나지 않았다. 시진핑 주석이 너무 일찍 칼을 꺼내든 것인가.

y1983010@fnnews.com 염주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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