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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그것뿐입니다"

파이낸셜뉴스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8.16 17:05

수정 2018.08.16 20:19

[감동시리즈-우리함께] ⑦ ‘빈자의 보금자리’ 지키는 신완식 요셉의원 의무원장
찾아오는 이, 드문 쪽방촌에 그들을 위한 의원이 있습니다
손때 묻은 낡은 의자에서 감히 당신의 삶을 생각해봅니다

소명을 따라 사는 삶이란 얼마나 숭고한가.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미래에 대한 뜻과 욕망을 내려놓고 마치 신의 음성을 따라 험지를 향해 나아가는 삶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뛰어난 학식과 지성으로 국내 의학계에서 감염내과 분야 최고의 권위자로 살아왔지만 가난하고 병든 자들의 친구가 되어주었던 예수 그리스도의 진정한 가르침을 쫓아 사는 이가 있다.

서울 영등포역 인근 쪽방촌 골목에 위치한 요셉의원. 1987년 고 선우경식 초대원장(1945~2008)이 설립한 자선 의료기관이다. 정부의 지원없이 자원봉사와 후원금으로 운영되는 이곳에는 하루 평균 100여명의 환자가 찾아오는데 무료로 진료를 하고 약까지 챙겨준다. '빈자(貧者)의 보금자리'라 불리는 이유다.

30여년 한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 낡은 병원을 지난달 27일 찾았다.
불볕더위 속에서도 환자들이 그득했다.

"요즘같이 더울 때 매일 술 마시면 큰일나. 한동안 지방에 가서 일한다고? 약을 좀 많이 챙겨줄테니까 잊지말고 잘 챙겨먹어."

일흔을 바라보는 백발의 노 의사가 진료실에서 중년의 한 남자에게 신신당부했다. 한 명의 환자가 나가자 금새 쉴틈도 없이 또 한 명의 환자가 밀려왔다. 현재 요셉의원의 의료를 책임지는 신완식 의무원장(68·사진)이 매일 진료를 보는 풍경이다.


■'영등포 슈바이처'아냐…그저 선대 원장의 유지를 이을뿐

신 원장은 지난 2009년 말 정년이 6년 남아있던 가톨릭대 의대 교수직을 박차고 노숙자들을 위한 무료 병원인 사회복지법인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부설 요셉의원에 왔다.

"젊을 때부터 정년까지 교수 생활만 하진 않겠다라고 생각했었어요. 마침 제가 결핵에 대해 연구를 하기도 했고 예전에 요셉의원을 세우신 선우경식 원장님과 미국에서 공부할 때부터 교감을 해오면서 이쪽에 조금 더 관심을 갖게는 됐었죠."

1977년 가톨릭대 의과대학을 졸업한 그는 여의도성모병원 내과과장과 가톨릭중앙의료원 세포치료사업단장 등을 지냈다. 잘나가는 의사였던 그가 무보수 의료봉사를 택한 것은 '남들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겠다'는 굳은 신념 때문이었다. 다만 처음부터 퇴직을 한 후 요셉의원에서 봉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2008년 4월엔가 선우경식 선생님이 선종하셨어요. 저는 이듬해까지 일을 했고요. 교수직을 내려놓고 어디로 가야 할까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중앙의료원장으로 계셨던 신부님이 제게 연락을 하셔서 이곳에서 봉사를 할 수 있겠냐고 제안을 하셨어요. 저는 그 결정에 따랐을 뿐입니다. 그 분의 빈자리를 채운 것일 뿐이죠."

신 원장은 "문학적으로는 우연과 같은 필연으로, 세속적으로는 운명이나 사주팔자 때문에, 종교적으로는 주님의 뜻에 따라 한 결정이었을 뿐"이라며 미소 지었다.

운명처럼 만난 이곳에서 진료를 시작한지 어느새 10년이 됐다. 하지만 그가 받는 월급은 '0원'이다. 그 사이에 '영등포 슈바이처'라는 별명도 붙었지만 그는 그 호칭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며 손을 내저었다. "그 말은 저보다 선대원장이신 선우경식 원장께 맞으면 맞죠."


■마음의 병까지 치료하는게 진짜 진료

10여년 동안 무료로 진료를 하면서 많은 일들을 겪었다. 선우경식 선대원장의 빈자리를 채우러 왔지만 초반에는 진료를 받으러 온 환자가 "난 신완식은 모르겠는데, 내가 선우경식 선생님 약 먹고 잘 살았으니 그대로 줘!"하며 퉁명스럽게 구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조금씩 환자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기 시작하니 마음이 열리는 것을 보게 됐다.

"몸의 병도 있지만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것도 중요하더라고요. 처음엔 떨떠름할 때도 있었지만 얘기도 들어주고 손도 만져주고 어깨도 두들기고 하니 일반 사람들보다 더 부드러운 속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을 통해 제 자신도 또 돌아보게 됐죠. 이제는 환자들이 오히려 다른 불평불만을 해요. 앞 환자한테 빨리 나오라고. 하하. 지금껏 자기에게 관심 가져준 사람이 없었는데 여기 오면 다른 느낌을 받게 되니까요."

영등포 쪽방촌의 변화도 목도했다. "옛날엔 노숙인들이 많이 찾아왔죠. 주민등록도 말소된 분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정부에서 말소된 분들의 정보를 살려줘서 보험에 가입된 환자들도 많이 찾아와요. 예전보다 차상위 계층에서 많이 오는 것 같아요. 무상 진료이기 때문에 영등포뿐 아니라 서울 전역에서 오는 사람들이 총 80% 정도에요. 이 사람들이 마냥 노는 사람들이 아니에요. 멀리 배 타고 염전 가서 서너달씩 있다 오기도 해요. 예전엔 알코올 의존증 환자가 80% 정도 됐는데 약을 주면 자주 잃어버려서 다시 처방도 해주고 보건소 가서 이렇게 약을 달라고 하라고 적어주기도 했죠."

■아내의 말 마음에 새겨…할 수 있을 때까지 봉사하고 싶어

개인적으로는 이곳에서 일하는 사이에 슬픔도 겪었지만 그는 소명에 대한 마음으로 다시금 일어섰다. 사랑하는 아내가 지난해 먼저 세상을 떠났다. 마음의 병이 몸의 병으로 전이됐다. "아내가 얼마전에 먼저 세상을 등졌어요. 그리고 1년만에 나한테 암이 생겼어요. 사실 이곳에 올 때도 가장 먼저 이해해준 사람인데 힘들었죠. 지난 4월에 식도암 판정 받고 3개월간 입원해서 치료를 받고 사실 복귀한지 얼마 안돼 조금 피곤하긴 해요. 근데 아팠는데도 하늘에서 아직 안 데려간걸 보면 내가 아직 그곳에선 필요가 없는지, 여기서 할 일 더 많이 하고 오란건지 모르겠어요. 선우경식 선생님은 하늘나라에서도 필요했는지 일찍 데려가셨는데. 허허…"

아내가 떠난 후의 빈자리가 여전하지만 그는 아내가 생전에 당부했던 말을 매일 떠올리며 살아갈 힘을 얻는다고 했다. "집사람이 아침마다 내게 늘 했던 말이 있어요. '오늘도 미소를 잃지 말라'고. 교수 시절에도 그 말을 지키려고 노력했지만 그땐 썩은 미소만 나왔었나봐요. 근데 여기선 안그래요. 사람들이 미소 짓는게 훨씬 자연스럽다고 말하는 걸 보니. 그 말이 지금까지 내게 박혀서 삶의 신념처럼 됐어요. 그 말 덕분에 환자를 진료할 때도 더 마음을 품을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사람의 마음까지 살피는 그의 정신은 주위의 모든 사람들을 감화시켰다. 그는 최근 JW그룹의 공익재단인 중외학술복지재단이 주는 제6회 성천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오는 28일 서울 소공로에 위치한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시상식이 열린다. 그는 이번에 받는 상금 1억원 전액을 기부할 예정이다.


"사실 지금 이 의원이 30년이나 되고 하니까 장소도 협소하고 복지 프로그램을 하는데 재원도 부족한 상황인데 여기에 쓰라고 하느님이 이번에 상을 받게 하셨나봐요"라고 말한 신 원장은 "병원이 위치한 지역이 현재 서울시 재개발 계획 안에 들어있어 불안함과 어려움이 많지만 앞으로도 이곳에서 계속해서 의료 봉사를 할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내 작은 소망"이라고 말했다.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 사진=서동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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