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훈식 칼럼]

최종현과 기업가 정신


최종현 SK그룹 선대 회장이 20년을 건너뛰어 다시 돌아왔다. 정확하게 말하면 최 회장의 기업가정신이 그의 20주기를 맞아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최 회장은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 혁신을 앞세운 개척정신, 회사보다는 국가와 사회의 이익을 앞세우는 산업보국 등 진정한 기업가정신을 몸소 실천한 인물이다. 그는 1970년대에 '21세기 일등국가론'을 앞세워 세계화와 시장경제 활성화를 통한 국가경쟁력 강화에 힘썼다. 작은 직물공장에서 출발한 SK가 40여년 만에 세계 최고 수준의 에너지·통신기업으로 도약한 것도 그의 기업가정신이 바탕이 됐다. 나라도 세계 10위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했다.

최 회장은 회사에 앞서 늘 나라의 발전과 장래를 걱정했다. 한국경제연구원장을 지내고 전국경제인연합회회장을 3차례나 연임하면서 한국 경제에 다각도로 이바지했다. 경제발전을 위해 정부에 대한 고언도 서슴지 않았다. 전경련 회장 시절인 1997년 외환위기 직전에는 폐암 수술을 받은 직후인데도 산소통을 메고 김영삼 당시 대통령을 만나 "이러시면 안 된다"며 구조조정 등 비상조치를 호소했다.

최 회장의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은 그의 어록에 잘 나타난다. 그는 1995년 국가경쟁력 민간위원회에서 "반도체와 함께 정보통신은 지금 눈에 보이지 않고 감도 안 오지만 21세기에는 우리가 상상하지 못할 만큼 진전될 것"이라고 했다. 그의 말대로 대한민국은 21세기 들어 통신·반도체 강국이 됐다. 최 회장의 기업가정신은 지극한 인재 사랑에도 배어 있다. '인재가 없으면 미래도 없다'는 신념으로 1974년 사재를 털어 한국고등교육재단을 설립하고 파격 지원으로 세계적 수준의 인재를 배출했다. 44년간 3700여명의 인재를 배출했고 이들은 국내외 학계와 경제계, 공직 등에서 국가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사업과 기술로 나라에 보답하고, 자원을 확보해 나라를 잘살게 만든다'는 그의 기업가정신이 남긴 족적은 차고 넘친다. 20년을 건너뛴 지금도 여러 분야에서 큰 울림이 되고 있다.

한국 경제가 살얼음판이다. 경제의 양대 축인 수출과 내수가 위축되며 경제가 활력을 잃었다. 고용사정은 사상 최악 국면으로 치달았다. 이런 가운데 대기업들이 투자 확대와 일자리 창출을 약속하며 '구원투수'로 나섰다. 삼성, 현대차, SK, 신세계, LG, 한화 등 주요 대기업들은 300조원 이상을 투자해 15만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외환위기 시절에 버금가는 투자위축과 고용참사로 일자리 하나가 아쉬운 마당에 대기업의 투자와 일자리 약속은 일자리정부를 자처한 문재인정부에도 단비다.

대기업이 밝힌 투자계획은 단순히 투자를 늘리고, 고용을 창출하는 것만 담긴 것이 아니다. 중소기업과의 상생, 사회공헌 등이 망라돼 있다. 기업가정신에 기반한 투자계획이다.

이제 정부와 정치권이 답해야 한다. 마침 문재인정부는 혁신성장을 해법으로 삼았다. 일자리를 만들고 투자를 늘리는 일은 정부가 아니라 기업이고, 그 기업이 투자하고 일자리를 만들도록 하는 힘의 원천은 혁신성장에 있다.
그 혁신성장의 동력은 기업가정신이다. 기업들의 투자 약속이 빌 공자 공약(空約)이 되지 않고 '보국'으로 이어지게 하려면 기업가정신을 살려줘야 한다. 대기업에 대한 색안경을 벗고 신바람 나게 곳간을 열도록 도처에 깔린 지뢰를 걷어치워야 한다.

poongnue@fnnews.com 정훈식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