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장칼럼]

"살아나나 싶더니…" 조선업계의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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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 클락슨이라는 회사가 있다. 조선업계 종사자들에게는 익숙한 이름일 것이다. 이 회사는 전 세계 조선해운업계의 시황을 집계하는데, 가령 어떤 배의 가격이 지난달에 이어 이달에 얼마나 올랐는지, 어느 나라의 어느 조선소가 무슨 배를 수주했는지 등을 모조리 집계해 고객들에게 나눠주는 회사다.

요즘 언론에 클락슨의 보고서가 자주 인용되는데 주로 올 상반기 회복 기미를 보이고 있는 한국 조선사들의 수주 내용에 대해서다.

그간 우리나라 조선사들이 일감 절벽에 신음하는 동안 중국 조선사들은 신나는 시절을 보냈는데, 올 들어서 그 상황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 발주량에서 중국을 누르고 우리 조선사들이 1위를 하고 있어서다. 게다가 배 중에 제일 비싼 배가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인데, 올해 발주되는 물량의 전부를 우리 조선사들이 싹쓸이했다고 한다. 언뜻 생각하기에 이제 조선업이 완전히 살아나려나 보다 싶기도 한다.

그런데 조선사들의 표정은 밝지 않다. 이런 숫자들이 오히려 부담스럽다는 얘기다.

보통 국내 조선사들이 가장 잘나갔을 때를 꼽으라면 2007년 무렵을 말하는데, 당시 전 세계 선박발주량은 1억7740만GT였다. 국내 조선사 빅3가 전 세계 톱3라는 말이 유행하던 것은 바로 이 시절이었다. 그런데 그 이후 몇 차례 조선업이 침몰 위기를 겪으면서 2017년까지 1억GT를 넘긴 것은 2013년 한 해를 빼면 전무하다. 2016년에는 290만GT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전성기 시절에 비해 얼마나 줄었는지는 당장 숫자 앞자리만 봐도 훤하다. "요즘 업황이 좋다면서요." 조선업계 관계자들이 요즘 이런 얘기를 들으면 가장 곤혹스럽다고 하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우리나라 조선사 중 가장 큰 곳은 울산의 현대중공업이다. 한때 울산에서 현대중공업 근로자들은 유니폼이 신용카드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지역경제의 중심이었고, 또 상인들에게는 큰 손님이었다. 지금은 회사는 어려운데, 근로자들은 또 살아남기 위해 파업을 벌이고 있는 실정이다.
사측은 고통을 분담하라고 요구하지만, 노조는 업황이 살아난다는 얘기에 올해는 꼭 임금을 올려야겠다고 단단히 맘을 먹은 모양이다.

소나기 올 때는 잠시 처마 밑에서 머물면 되겠지만, 지금은 빗물을 걱정할 게 아니라 거친 강물에 빠져 지푸라기 하나를 잡고 버티는 상황이다. 노조의 투쟁으로 이득을 볼 사람이 있기나 하겠는지 생각해봐야 할 때다.

ahnman@fnnews.com 안승현 산업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