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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 이 사건]헌인마을에 불어온 개발바람, 갈등의 씨앗으로

이진석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8.29 10:30

수정 2018.08.29 10:30

헌인마을 일대/사진=fnDB
헌인마을 일대/사진=fnDB
'헌인마을'은 서울 서초구 내곡동 일대에 위치한 한센인들의 자활촌이다. 지난 1963년 정부 소유의 국유지에 한센인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이 마을은 에틴저 목사가 주민들을 위한 집을 지어주면서 '에틴저마을'로 불리기도 했다.

한센인들이 모이면서 마을 규모가 점차 커지자 대한나협회는 1972년 정부에 국유지 매각을 신청했고, 정부는 헌인마을에 거주하는 세대주 72명이 공동명의로 토지 소유권을 갖는 조건으로 땅을 팔았다. 이후 1987년 이들 주민들이 사원(구성원)으로 참여하는 '헌인새마을추진위원회(위원회)'가 꾸려져 정부로부터 사들인 땅을 관리해왔다.

■수십 년 만에 찾아온 개발 기회..반대 주민은 소송으로
십수년이 지나 낡은 가구공장과 판잣집들만 남은 낙후지역이었던 헌인마을에도 개발바람이 불었다. 서울시가 2003년 이 마을을 자연녹지지역에서 제1종 및 제2종 전용주거지역으로 용도 변경하면서다.


이듬해 위원회 임시사원총회에서는 '도시개발사업을 추진하기 이전 단계에서 사원들의 토지와 마을 공동재산을 팔자'는 쪽으로 방향을 정했다. 공동명의로 소유한 땅을 팔아 각자 몫을 받고 마을을 떠난다는 것이다.

이듬해 위원회 측은 도시개발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부동산개발회사인 아르웬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고, 삼부토건과 동양건설사업, 우리투자증권 등이 참여한 프로젝트금융투자회사(PFV) '우리강남PFV'가 시행사로 2006년 설립됐다. 위원회 측은 우리강남PFV에 마을 땅을 382억여원에 넘기기로 했다. 땅을 판 돈은 위원회에 속한 각 세대주들이 똑같이 나눠 갖기로 결정됐다.

이를 위한 1차 결의에서는 매매대금을 사원 1인당 2억1000만원씩 지급한다는 내용과 함께 '배분금 청구권은 명의신탁 받은 재산을 반환하는 경우에만 행사할 수 있다'는 조건이 달렸다. 2차 결의에서는 사원 1인당 6000만원씩 지급하기로 했다.

그러나 개발 사업에 반대한 일부 주민들은 '헌인마을자치회'라는 별도의 조직을 만들어 토지매도를 거부했다. 이에 위원회 측은 반대파인 한모씨 등 자치회 소속 4명에 대해 '자치회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으며 위원회가 한씨 등에게 명의신탁한 재산의 반환을 거부하고 있다'는 사유로 이들의 사원 자격을 박탈했다.

이후 한씨 등은 "위원회는 매매대금 382억여원을 사원들에게 균등하게 분배하기로 결의했으나 사업에 동의하지 않은 원고들에게는 분배금을 지급하지 않고 있다"며 매매대금을 사원 수로 나눈 금액인 각 5억10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소송을 냈다.

위원회 측은 "이들은 사원총회에서 제명된데다 상당한 시간이 흘러 제명결의의 효력을 다툴 권리도 이미 사라졌다"며 "제명결의 효력이 인정되지 않더라도 명의신탁 받은 재산을 반환하거나 약속하지 않는 한 분배금을 청구할 수 없다"고 맞섰다.

■법원 "명의신탁 재산반환 조건 인정돼..6000만원만 분배받아야"
법원은 한씨 등 4명이 위원회로부터 분배받을 수 있는 돈은 각각 6000만원이라고 판결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33부(김선희 부장판사)는 "헌인마을의 공동명의 토지는 사원들의 총유물(사단이 소유하는 공동소유물)에 해당하며 한씨 등 명의의 공유지분은 명의신탁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헌인마을 주민들은 개인 자격으로 토지를 공동매수한 것이 아니라 헌인마을이라는 비법인사단 구성원이라는 집합체로 영구적인 한센인 공동체를 마련하기 위해 토지를 매수한 것"이라며 "정부도 한센인 공동체의 정착을 지원하기 위해 헌인마을을 매수인으로 해 토지 매각을 승인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개발사업에 따른 부동산매매대금 1차 정산금은 공동명의 토지 공유지분 반환미동의자는 예외로 한다'는 내용이 결의된 사실이 인정된다"며 "원고들은 피고에 대해 명의신탁 재산반환을 거부하고 있으므로 1차 결의에 따른 배분금 청구는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이유 없다"고 판단했다.

다만 2차 결의에서 결정된 6000만원은 명의신탁 재산반환 조건이 결부됐다고 볼 증거가 없다며 한씨 등에게 지급하라고 판시했다.


한편 헌인마을 개발을 주도했던 삼부토건과 동양건설산업은 자금난에 발목잡혀 결국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이후 개발 사업은 박근혜 정부 시절 '비선실세' 최순실씨가 이권개입 의혹에 휘말리는 등 비극만 불러온 채 12년째 좌초된 상황이다.

fnljs@fnnews.com 이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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