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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영 칼럼] 팍스 아메리카나 vs 팍스 시니카

구본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8.29 17:13

수정 2018.08.29 17:13

미·중 패권 경쟁 점입가경
美, 무역전쟁서 초반 기선.. 한미동맹 가치는 더 커져
[구본영 칼럼] 팍스 아메리카나 vs 팍스 시니카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를 뜻하는 '팍스 아메리카나'와 고개를 든 '팍스 시니카'(중화 패권)가 일으키는 마찰음이 요란하다. 기존 패권국과 새로 부상하는 강국은 결국 부딪칠 수밖에 없는 운명인가.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란 말이 실감나는 요즘이다.

지난주 예정됐던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4차 방북이 전격 취소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급제동을 걸면서다. 그는 "우리의 대중 무역공세가 훨씬 강경해졌기 때문에 그들(중국)이 예전만큼 북한 비핵화 과정을 돕고 있다고 믿지 않는다"고 슬쩍 속내를 드러냈다. 북한보다 그 뒷배(중국)가 더 거슬린다는 투였다.


그러잖아도 중국을 향한 트럼프의 견제구는 연일 거칠어지고 있다. 지난 7일 보잉 등 13개 기업 최고경영자(CEO)를 초청한 만찬 내내 '거침없는 하이 킥'을 날렸다. "그 나라에서 온 거의 모든 학생은 스파이"라며 중국의 지식재산권 침해를 원색 비난했다. 특히 "세계무역을 방해할 뿐 아니라 모욕적"이라며 시진핑 국가주석의 비전인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 사업까지 직격했다.

무역대전에 관한 한 미국이 승기를 잡은 인상이다. 미국의 고율관세에 맞서다 중국 경제에 경보음이 울렸다. 2·4분기 성장률은 연율 기준 6.7%로 1·4분기 대비 0.2%포인트 하락했다. 애초에 전장은 엄청난 대미 흑자로 인해 중국으로선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 게다가 '달러 패권'을 가진 미국에 '셰일혁명'이 날개까지 달아줬다. 미국은 유가 상승시 교역조건이 악화되는 중국에 비해 훨씬 유리한 입지여서다.

반면 증시 약세에다 위안화 가치가 떨어지면서 중국은 '실탄'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일대일로 사업이 차질을 빚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은 처음부터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개발도상국에 빚을 지워 해당국을 조종하려는 '채무 제국주의'로 봤다. 그러나 올 상반기 일대일로 관련 55개 국가에 대한 중국의 직접투자액은 지난해 동기에 비해 15%나 감소했다. 시 주석이 '중국몽'(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 깃발을 섣불리 내건 느낌이다. 덩샤오핑의 '도광양회'(어둠 속에서 힘을 기른다) 유지를 너무 일찍 잊은 채….

물론 트럼프가 주도하는 '네오(신)팍스 아메리카나'가 안착했다고 보긴 어렵다. 그 자신 러시아 스캔들로 인한 탄핵 위기에서 아직 자유롭지 못한 처지다. 분명한 건 그가 중국의 도전을 뿌리치려 빼든 '미국 우선주의'란 신병기가 직격탄 아닌 산탄(散彈)이란 점이다. 중국으로 연결되는 송유관 건설 등 620억달러(약 69조3500억원) 규모 일대일로 사업을 시작한 파키스탄이 유탄을 맞지 않았나. 미국이 "(돈이) 중국으로 갈 것"이라며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반대해 진퇴양난에 처하면서다.

군사적으로도 미·중 패권 경쟁이 확산될 참이다. 이미 트럼프 대통령은 비핵화 협상을 무역전쟁과 연계시켰다. 우리가 '굿을 보며 떡이나 먹을' 한가한 처지는 아니다. 석연찮은 북한산 석탄 수입의 전말이 그래서 걱정스럽다. 고의든 실수든, 대북제재망을 무력화하려는 중국과 발을 맞춘 꼴이라서다.


미·중 두 고래가 한반도 해역에서 다시 맞서려는 지금. 문재인정부가 중국과 굳이 척을 질 필요는 없지만 한·미 동맹을 저버리는 건 더욱 위험한 도박이다. 미국이 중국보다 힘이 더 세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자유와 인권, 민주주의와 복지 등 여러 측면에서 아직 '미국적 표준'이 세계 문명사의 큰 흐름에 가까워서다.

kby777@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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