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팔로 만든 세상 단하나의 신발

[감동시리즈-우리함께] (9)장애인 맞춤신발 제작하는 남궁정부 소장
"내게도 한때는 두팔이 있었죠" 20년전 열차 사고로 오른팔 잃어 장애 생기니까 장애인이 눈에 들어왔어요..그때부터 내 신발 주인이 바뀌었죠
오른팔 대신 얻은 '친구'..양쪽 다리 10㎝ 이상 차이나는 사람, 자식에게도 숨기는 발 보여주는 사람..다양한 신발 만들며 고통도 함께 나눠
"남은 세상 밝게 살아아죠" 구두장이 자부심으로 한평생 살았어요..장애 때문에 비관하는 사람들 위해 제화 기능공 양성소 여는 게 꿈이에요

사고로 오른팔을 잃은 '한 손 구두장이' 남궁정부씨는 장애인을 위한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신발'을 만든다. 사진=박범준 기자
세창정형제화연구소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장애인들의 발 사진(위쪽)과 신발 모형.
세창정형제화연구소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장애인들의 발 사진(위쪽)과 신발 모형.

벌써 몇 바퀴째인지 모르겠다. 남궁정부 세창정형제화연구소 소장(77)의 눈길은 끈질기게 A씨와 A씨가 신고 있는 신발을 날카롭게 좇았다. A씨의 양발은 높이가 10㎝가량 차이 난다. 왼쪽 신발 굽이 유달리 높은 이유다. 한참 세창정형제화연구소 안을 걷던 A씨가 "소장님, 편한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남궁 소장의 얼굴엔 마치 단 한번의 촬영만으로 감독의 OK사인을 받아낸 연기자처럼 뿌듯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래도 너 대회에 신고 나갈 신발인데 다시 한번 봐봐." A씨는 곧 있을 중요한 선발대회(A씨의 의사에 따라 구체적인 정보는 밝히지 않는다)에 남궁 소장의 신발을 신고 출전하기로 했다. 남궁 소장은 기자에게 "나는 A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봐왔다. 이번 대회에서 꼭 잘돼야 한다"고 말한 뒤 A씨에게 재차 신발 상태를 확인했다. A씨는 다시 한번 제화연구소 안을 몇 바퀴 더 돌고는 만족한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제서야 남궁 소장은 A씨의 신발에서 눈길을 거뒀다.

남궁 소장은 평생을 구두장이로 살았다. 기자의 발을 힐끗 보기만 했는데도 "넘어지기 쉬운 발이니 조심해야겠다"고 조언할 정도의 베테랑이다. 남궁 소장은 사고로 오른팔을 잃고 장애인들을 위한 맞춤신발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신발인 셈이다. 세창정형제화연구소 벽 한편은 고객 한 명 한 명마다 어떤 발과 다리를 가지고 있는지 적힌 파일로 가득 차있다.

■한순간 사라진 오른팔…"그때부터 장애 제대로 보여"

예전에는 뾰족하고 예쁜 신발들만 만들었다고 했다. 이런 그의 인생이 송두리째 바뀐 건 그가 55세가 되던 해 11월 어느날이었다. 그날 남궁 소장은 월급봉투를 받아들고 동료들과 거나한 술자리를 가졌다. 사고는 집으로 가는 길에서 발생했다. 혼잡한 신도림역에서 사람들에 밀려 선로에 떨어진 것. 그 순간 전동차 바퀴가 그의 오른팔을 밟고 지나갔다. 매일 두 손으로 신발을 만들던 그의 삶은 그렇게 예상치도 못하게 암흑 속으로 엉켜들어갔다.

"사람이 후천적 장애를 입게 되면 극복하기가 힘들다고들 그래요. 이 일을 하다 보니 자기가 장애를 갖게 됐다는 걸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어요. 심지어 비관을 못 이겨서 마약을 접하는 경우도 있죠. 그런데 나는 그걸 빨리 잊었어요. 이왕에 장애인이 됐는데 고민하고 뭘 한다고 해서 떨어진 팔이 다시 붙을 리가 없잖아요. '내가 진짜 장애를 갖게 됐구나'라고 차분하게 받아들였어. 어쩌겠어요. 다시 살아야지."

남궁 소장은 남은 왼팔로 계속 구두를 만들었다. 지난 20여년간 매일 해온 일이었지만 많은 것이 뒤바뀌었다. 일단 그가 만드는 구두의 주인이 바뀌었다. 다리나 발에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맞춤형 신발을 제작하기 시작한 것. 남궁 소장은 "이전에는 장애인들을 보면 '많이 불편하시겠구나' 이 생각만 했지 그 고통을 몰랐다"며 "장애를 입고 나니까 비로소 장애인을 제대로 보게 됐다"고 털어놨다.

한 팔로 구두를 만드는 일은, 그것도 장애인들을 위한 특수신발을 만드는 일은 정말이지 힘에 부치는 일이었다. 사소한 도구 하나도 전부 개량해야 했다. 오랫동안 거래했던 재료 거래상들과도 이전 같을 수 없었다. 남궁 소장은 "특수신발 사업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이전처럼 외상거래를 하기도 어려웠다"며 "매일매일 재료상에 가서 한 켤레, 두 켤레 분의 재료를 사와야 했다"고 회상했다. 비라도 오는 날이면 우산에 무거운 신발재료를 끈으로 연결해 한 팔로 짊어졌다. 그는 이 대목에서 "그땐 정말 고생스러웠다"며 생각만 해도 힘들다는 듯이 부르르 떨었다.

■마음까지 나누는 구두장이…"소장님 고맙습니다"

지금까지 2만5000여명의 장애인들이 남궁 소장이 만들어준 구두를 신었다. 남녀노소, 국내외를 막론한 고객들이 남궁 소장의 세창정형제화연구소를 꾸준히 찾고 있다. 세창정형제화연구소 벽면 곳곳은 고객들로부터 날아든 편지로 도배돼 있다. 그중에는 자신도 '소장님처럼 훌륭한 사람이 돼 남들을 돕고 살겠다'며 고사리 같은 손으로 삐뚤삐뚤 쓴 어린이들의 편지도 보였다. 일본, 베트남, 몽골 등 이웃나라에서 보내온 편지와 선물도 잔뜩이다.

고객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그는 사고를 당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맞았던 한 손님을 떠올렸다. 그 손님은 선보는 자리에 신을 구두를 주문했다. 그 손님이 유달리 기억에 남는 이유는 그의 어머니 때문이다. "나도 나름대로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밤낮으로 고민하고 있는데, 엄마한테 말 그대로 매일매일 전화가 왔어요. 그분은 자신을 장애를 가진 자식을 낳은 죄인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야. 그 마음이 느껴지니까 나도 더 신경을 써서 만들어줬지. 만들어진 신발을 보고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더라고."

세창정형제화연구소를 찾는 장애인들에게 남궁 소장은 '구두장이' 그 이상이다. 장애의 아픔을 함께 겪은 동료이자 친구다. 그들이 가족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고민이나 고통을 남궁 소장에게 털어놓는 이유다. 한번은 80대 노모를 모시고 온 60대 고객이 있었다. 신발을 만들러 온 사람은 노모였다. 신발 제작을 위해 맨발을 드러내야 했던 노모는 아들에게 잠시 나가있으라고 했다. 남궁 소장은 "아들에게도 차마 보여줄 수 없었던 고통이었을 것"이라고 공감했다.

"소장님, 제 안식구가 세창정형제화연구소에만 오면 할 말, 안할 말 다 한다고 하더라고요. 소장님이랑 얘기하면 편안하대요. 고맙습니다." 제화연구소를 꾸준히 찾은 한 고객의 남편이 남궁 소장에게 한 말이다. 남궁 소장은 장애의 아픔은 부부도, 부모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오직 당사자만이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의 장애를 숨기지 않고 고객들과 마음을 나눈다. 이럴 때면 그는 '없어진 오른팔의 덕을 쏠쏠하게 본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제화 기능공 양성소가 목표…바르게 잘 산 것 같아요"

남궁 소장이 가진 꿈은 단출하다. 장애인 제화 기능공을 키우는 양성소를 만드는 일이다. 기숙사가 딸린 양성소면 더욱 좋겠다. 이왕이면 자신처럼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기능공으로 일하길 바라기 때문이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폐인처럼 사는 장애인을 많이 접하다 보니 더욱 그런 바람이 커졌다. 이는 구두장이로서의 자부심과도 맞닿아 있는 바람이다. 그는 10대에 양화점의 온갖 허드렛일을 거들며 구두를 만드는 법과 장인정신을 배웠다. 배고프고 힘들었지만 한평생 그를 버티게 해준 시간들이었다.

"나름 바르게 잘 산 것 같아요.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생각합니다." 자신 있게 자신의 인생을 정리하는 그의 모습에선 자부심이 느껴졌다. 여름이면 덥다고, 겨울이면 춥다고 시시때때로 전국 각지에서 남궁 소장에게 선물이 밀려온다. 남궁 소장의 고객이 보내온 것들이다. 고객들이 보내준 고기와 음식으로 세창정형제화연구소 식구들과 회식을 한 적도 여러 차례다.

남궁 소장은 '남은 세상 밝게 살라'는 선배의 조언을 따라 가게 이름을 '세창(世彰)'으로 지었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큰 절망에 빠져 있던 그가 재도약을 앞두고 있던 때 받아든 이름이다. 적어도 그는 많은 사람에게 밝은 삶을 선사하고 있었다. 그 공로로 그는 2010년 국민포장, 2014년 국토부장관 표창을 받았다.
이에 대해 남궁 소장은 "더 잘하라는 채찍질처럼 느껴질 뿐"이라며 부끄러워했다.

ktop@fnnews.com 권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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