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검찰·법원

'정반대' 전직 대통령들의 재판 스타일..결말도 다를까?

이진석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9.02 09:50

수정 2018.09.02 09:50

말 아꼈던 박근혜, '직접 변론' 자처한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사진=연합뉴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사진=연합뉴스
미국의 법정 수사 드라마 '로 앤 오더(Law & Order)'의 한 장면에서 피고인 측 변호사는 자신의 의뢰인에게 '법정에서 자신을 직접 변호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변호사의 입을 빌리지 않은 '날 것의 변론'은 오히려 피고인에게 불리하게 작용될 수 있다는 취지다.

법정에 있는 피고인 대다수가 억울한 사연을 갖고 있음에도 쉽사리 발언권을 갖지 않는 데는 이러한 이유가 있다. '국정농단'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박근혜 전 대통령은 정석을 잘 따른 피고인이다. 앞서 박 전 대통령은 자신에 대한 법원의 구속 연장 결정이 있기 전까지 6개월의 재판 동안 법정에서 한 번도 발언한 적이 없다. 옆 좌석에서 격정적으로 목소리를 높였던 국정농단 사건의 공범 최순실씨와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은 "재판부에 대한 믿음이 더는 의미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는 말을 남긴 채 아예 재판을 포기해 버렸고, 1심 징역 24년, 2심 징역 25년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지난달 31일이었던 상고 기한까지 담당 재판부에 상고장도 내지 않았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재판에 임하는 스타일은 박 전 대통령과 대척점에 서 있다. 박 전 대통령이 떠난 서울중앙지법 대법정에서 재판을 치르고 있는 그는 넋을 잃은 표정을 짓고 있었던 박 전 대통령과 달리 공판 내내 집중하며 검사 측의 주장을 유심히 듣는 모습이다.

특히, 이 전 대통령은 다른 형사재판의 피고인들과 달리 입장을 드러내는 데 적극적이다. 감정적으로 발언을 쏟아내는 최씨와도 또 다르다. 침착한 태도로 검찰의 공소사실에 대해 항변한다.

첫 번째 공판 당시 진술에서도 핵심 혐의인 다스 실소유주 의혹과 삼성의 소송 비용 대납을 부인하는 데 시간을 할애했다.

■침묵 지킨 朴 vs 측근 진술 적극 반박한 李
이 전 대통령의 재판에는 나온 증인은 단 한 명뿐이다. 1심 재판 과정에서 138명(중복 포함)의 증인이 법정에 출석한 박 전 대통령의 재판과 비교하면 차이가 극명하다.

이 전 대통령은 첫 공판에서 "증인 대부분은 전대미문의 세계 금융위기를 극복하고자 저와 밤낮 없이 일한 사람들"이라면서 "국정을 함께 이끌어온 사람들이 다투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드리는 것은 저 자신에게 받아들이기 힘든 참단한 일"이라며 참고인 진술 조서 등을 증거로 사용하는 데 동의한 사유를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정작 법정에서는 자신을 궁지로 모는 진술이 공개될 때마다 입을 열었다.

한 때 '집사'로 불렸으나 자신의 의혹을 폭로한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에 대해서는 "김 전 비서관을 가능한 보호해주고 싶은 심정이다. 애정을 갖고 있다"면서도 즉시 변호인을 통해 그의 기억력을 문제 삼았다.

이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다스(DAS) 관련 보고를 수시로 받았다는 김성우 전 사장의 진술에 대해서는 "(김 전 사장은)제 앞에 와서 고개를 들고 이야기를 할 입장이 못 된다"고 일축했다.

'BBK 주가조작' 의혹의 핵심 인물인 김경준씨에 대해서는 "젊은 사람이 와서 새로운 분야를 하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사기성이 있어 충격을 받았다"면서 "얘는 법으로 다스려야지 이런식으로 한국에서는 못하게 해야 한다는 생각에 'BBK' 말도 못 붙이게 했다"며 본인과 관련성이 없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이 전 대통령의 '뇌물 혐의'를 뒷받침할 증거로 떠오른 비망록을 쓴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에게도 부정적인 표현을 쏟아냈다.

"거짓말 탐지기를 해서 확인했으면 좋겠다", "자발적으로 (나에게) 접근한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대면을 하면 고개를 돌리고 눈을 마주치지 않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있다", "선거운동 때 전혀 얼굴을 비추지 않아 관심이 없었던 사람" 등 작심 발언을 했다.

이어 이 전 회장의 진술에 대해 "나를 궁지에 몰기 위해 그렇게 진술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너무 얼토당토 않다"며 항변했다.

■적극적 재판 임했던 李..끝내 웃을 수 있을까
이 전 대통령의 법정 발언은 자신의 판결에 불리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에서 무모한 행동일 수 있다. 양형 면에서도 유죄가 입증될 시 책임을 주변인들에게 돌리고,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며 부정적으로 작용할 여지도 있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재판에서 피고인 스스로 발언권을 내는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다.
피고인이 법정에서 엉뚱한 소리를 하면 재판에 불리한 결과가 나올 수 있어 증언을 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며 "자신의 발언이 불리한 증거로 쓰일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진술거부권을 행사하려는 경향이 더 크다"고 설명했다.

건강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노구를 이끌고 재판에서 적극적으로 자신의 혐의를 해명해온 이 전 대통령의 행보가 유리한 판결을 불러올 지 그 반대가 될 지 관심이 모인다.
이 전 대통령의 1심 재판은 오는 6일 예정된 결심공판을 끝으로 마무리된다.

fnljs@fnnews.com 이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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