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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장칼럼]15년전 공무원 성윤모의 '통찰'

정상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9.03 16:57

수정 2018.09.03 16:57

[차장칼럼]15년전 공무원 성윤모의 '통찰'


2001년이다. 성윤모는 39세 혈기왕성한 산업자원부 공무원(서기관)이었다. 그는 운 좋게 일본 경제산업성에 2년여간 파견됐다. 그가 세계 2위 경제대국(당시) 일본에 도착해 처음 간 곳은 도쿄에서 가장 큰 도쿄역 인근의 야에스 서점이다. 그가 찾은 책들은 제조업에 관한 것이었다. '제조업은 불멸이다(2001, 마키노 노보루)' '기술참모가 일본을 변화시킨다(2002, 가라쓰 하지메)' 등등 일본이 장기불황을 극복하기 위해 제조업 경쟁력을 혁신·발전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담긴 책들이다.
어떤 책은 일본 제조업에 대한 예찬뿐이었으나 그는 그 책들로부터 일본 경제와 제조업, 21세기를 이해하는 데 커다란 도움을 받았다. 일본 제조업의 성쇠를 연구한 그는 2003년 일본에서 책(한국의 제조업은 미래가 두렵다)을 썼다.

당시 일본은 고도성장의 한계에 직면, 제조업이 추락하기 시작한 때였다. 당시 일본의 총 부가가치 중에 제조업 비중은 21.6%. 최고 호황기였던 1990년대 39%였던 점과 비교하면 급감한 수치다. 자국 내 제조업 생산기지가 중국, 동남아로 빠져나가는 '공동화(空洞化)'도 심화됐다. 설비투자도 줄었다. 고령화도 빨랐다. 실업률은 2001년 역대 최고 수준인 5%를 넘어서는 등 '구조적 경제 불황'이었다. 게다가 한국, 중국 등 후발국의 거센 추격으로 '불멸할 것'이라던 일본 제조업은 구조조정에 내몰렸다. 당시 한국은 달랐다. 외환위기를 최단기에 극복한 후 제조업의 최대 호황기를 맞았다.

15년이 지났다. 책은 절판됐고, 종이는 누렇게 바랬다. 그러나 위기에 직면한 일본 제조업의 15년 전 모습이 우리의 현실과 너무 닮았다. 한국의 조선업은 2000년대 플랜트 수출·고용의 '반짝 호황'에 취해 미래를 등한시했다. 일자리 수만개가 사라졌다. 정부는 수조원의 혈세를 쏟아부었으나 '땜질'에 그쳤고, 제대로 된 구조조정에 실패했다. 자동차산업 역시 한때 미·중 쪽 수출 호황에 취해 산업 변화에 뒤처졌다. 지방 공장을 폐쇄한 제너럴모터스(GM) 사태 등 '예고된 악재'가 터졌다. 정부는 뒤늦게 추경을 끌어다 수습 중이다. 제조업 취업자 수는 지난 7월 12만7000명(2.7%)이 줄어 산업군 중에 최악의 성적이다. 역대 최대의 수출(올 1~8월 수출 3998억달러)이 우리 경제를 그나마 견인하고 있는데, 이마저도 유가 상승과 반도체에 편중(22% 비중)된 '반쪽 호황'이다.

15년 전, 성윤모의 처방은 '제조업 혁신'. 고도화·융합화·네트워크화라는 혁신 주도형 성장전략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허청장을 맡고 있는 그가 지난달 30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 지명됐다. 산업부는 탈원전 에너지전환 정책에 발목을 잡혀 국가의 미래가 달린 산업정책에서 성과가 지지부진하다.
성윤모가 장관에 임명되면 그의 '15년 전 통찰'이 정책에서 실현되길 바란다.

skjung@fnnews.com 정상균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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