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이구순의 느린걸음

[이구순의 느린 걸음] 한국 콘텐츠 기업도 웃을 수 있는 통신정책

이구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9.04 16:32

수정 2018.09.04 16:32

[이구순의 느린 걸음] 한국 콘텐츠 기업도 웃을 수 있는 통신정책

버스 정류장이나 지하철 승강장에 서 있어 보면 주변사람 열에 여덟은 동영상을 본다. 넷플릭스나 유튜브를 통해 해외 드라마도 보고 영화도 본단다. 그동안 데이터가 늘 부족해 스마트폰을 마음껏 쓰지 못하던 청소년들도 스마트폰으로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데 부담이 없어졌다고 한다.

하루가 멀다고 이동통신 회사들의 새 요금상품이 쏟아지면서 월 10만원 정도면 온 가족이 데이터를 무제한으로 나눠 쓸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정부가 지난해부터 강력하게 밀어붙인 통신요금 인하정책의 성과를 길거리에서 느낄 수 있다. 문재인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찬반 논란이 팽팽하지만 통신요금만 떼어놓고 보면 완벽에 가까운 정책 성과를 냈다고 평가해도 좋을 듯하다.


그런데…국민들이 데이터를 부담 없이 쓰면서 우리 기업들의 콘텐츠사업은 그만큼 성과를 내고 있는 걸까. 네이버, 카카오 같은 큰 회사는 물론이고 데이터 무제한 시대의 바람을 타고 성공가도를 달리는 신생기업 이름도 찾아보기 어려운 이유는 뭘까. 넷플릭스, 유튜브, 페이스북 같은 외국 회사들만 데이터 무제한 시대의 최대 수혜자로 꼽히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물론 콘텐츠의 힘이다. 넷플릭스나 유튜브에는 볼만한 콘텐츠가 많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다. 넷플릭스나 유튜브, 페이스북이 콘텐츠에 아낌없이 투자할 수 있는 이유는 통신망 사용료를 걱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넷플릭스가 초고화질 드라마를 제공하는 배경에 어댑티브 스트리밍이라는 기술이 있다고 한다. 일단 소비자가 기다리지 않고 바로 동영상을 볼 수 있도록 낮은 화질로 동영상을 시작한 뒤 통신망 용량에 맞춰 초고화질로 영상을 스스로 조절하는 기술이란다. 소비자는 기다리지 않아도 영상이 바로 나오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초고화질 영상으로 맞춰지니 넷플릭스가 편하고 좋은 서비스다. 그러나 통신회사는 넷플릭스가 통신망 용량을 모두 먹어버리니 설비를 증설할 수밖에 없어 속앓이를 한다. 넷플릭스는 한국 통신회사와 통신망 용량에 대한 협상 따위는 안한다. 통신회사와 협상하지 않은 채 영상기술을 개발하는 것은 네이버나 카카오 같은 국내 회사는 꿈도 못 꿀 일이다.

애초부터 이렇게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쟁을 했으니 무제한 데이터 시대가 됐어도 한국의 콘텐츠 기업들은 털끝만큼도 혜택을 못 입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다음 단계 정책으로 넘어갔으면 한다. '참잘했어요' 도장을 받을 만큼 성과를 낸 통신요금 정책 다음으로 콘텐츠산업의 기울어진 운동장 바로잡기 정책으로 진도를 나가줬으면 한다.
해외 콘텐츠 기업들도 한국에서 서비스를 제공할 때는 국내에 서버를 설치하고 통신망 사용료에 대해 통신회사들과 협상하도록 해야 한다. 적어도 한국에서 서비스할 때는 한국 기업과 한국 소비자에게 차별이 없도록 먼저 조치를 취하도록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만만한 한국 통신회사들의 팔 비틀기만 잘하는 우리 정부가 아니라는 것을 다음 단계 정책으로 보여줬으면 한다.

cafe9@fnnews.com 이구순 블록포스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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