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노무현 못다 이룬 꿈, 文대통령 평양서 다시 잇는다

문재인 대통령이 4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했다. 청와대는 이날 문 대통령이 오후 9시 부터 50분 동안 트럼프 대통령과 '특사단 방북 논의'에 대해 통화 했다고 밝혔다. (청와대 페이스북) 2018.9.4/뉴스1

18일 평양 정상회담서 '한반도 비핵화' 담판

(서울=뉴스1) 홍기삼 기자 = 지난 2000년 6월13일 평양순안공항.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특별기에서 내리기 전 트랩을 내려오지 못하고 잠시 북녘 땅을 보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트랩 아래에는 김 전 대통령을 공항까지 영접나온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전 세계가 역사적인 1차 남북정상회담의 결정적인 이 장면을 지켜보며 감동을 나눴다. 이 회담에서 양 정상은 분단이후 처음으로 만나 '6.15 남북공동선언'을 이끌어냈다. 남과 북의 정상이 한반도 운명을 결정지을 '운전석'에 최초로 앉은 것이다.

그러나 그해 11월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의 앨 고어가 조지W. 부시에게 패배하면서 미국 정부의 대북 정책이 급선회하면서 한반도 운명도 바뀌기 시작했다. 대북 강경정책이 워싱턴에 횡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럼에도 김대중 정부는 '남북장관급 회담' 등을 통해 경의선 철도와 도로를 합의하는 등 남북 평화정책을 이어갔다.

그 다음 정부인 노무현 정부가 남북화해 정책을 계속 이어갔지만, 2차 남북정상회담 기회는 좀처럼 찾아오지 않았다. 더구나 2002년 10월 북한의 고농축우라늄 의혹으로 시작된 2차 북핵위기는 한반도를 전쟁의 위험으로 몰고 갔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한반도 주변 주요국이 참여한 '6자 회담'이 열렸지만 성과없이 끝나자, 북한은 급기야 2005년 2월 핵보유를 선언했다. 가까스로 복원된 6자회담을 통해 그해 '9.19 공동성명'이 도출돼 위기국면이 일시적으로 해소되는가했다. 당시 이 성명은 북한 핵을 해결하기 위한 국제적인 합의였다.

9.19 합의에 의한 평화국면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미국 재무부가 9.19공동성명이 체결되기 직전이었던 9월16일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은행을 돈 세탁 우려 대상으로 지정, 북한 소유로 의심되던 약 2500만 달러를 인출 금지대상으로 지정했다.

북한은 이를 가만히 보고 있지 않았다. 9.19 공동성명로 촉발된 평화국면이 본격적으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급기야 북한은 2006년 7월 장거리미사일인 대포동 2호를 발사하고 10월 1차 핵실험을 감행하기에 이르렀다.

2007년 2차 남북정상회담은 이런 살얼음 분위기속에서 개최됐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10.4 선언'을 통해 남북관계에서 분야별로 협력할 수 있는 내용을 상세하게 정리했다. 지금도 유효하다고 평가될 만큼 남북 전 부문에 걸쳐 협력사항이 총 망라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이같은 남북간 합의는 사실상 휴지조각이 됐다.
이와 함께 김대중, 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이 이루고자 했던 남북평화협력 시대의 꿈도 함께 사그라들었다.

불과 열흘 정도 남아있는 18일 평양 남북정상회담은 이 꿈을 다시 기억 속에서 불러내오고 있다. 두 전직 대통령처럼 다시 평양 땅을 밟고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북미협상 교착상태를 풀어야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어깨가 그 어느 때보다 무거운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