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옛 동독은 왜 극우가 됐나


지난달 말 독일 작센주 켐니츠, 반(反)이민 시위대에 섞여있던 한 시민은 도이체벨레(DW) 방송의 카메라에 왜 자신이 거리로 나왔는지 설명했다. 그는 "당신들은 사람들이 사라진 한밤중에 다시 카메라를 들고 여기 나와 봐야 한다"며 "그때가 되면 저 사람들(이민자)이 주변에 잠복해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거다. 우리는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은 통계만 놓고 보면 납득하기 어렵다. 24만7000명이 사는 옛 동독의 소도시는 전체 인구의 약 8%만이 이민자다. 서부의 프랑크푸르트나 뮌헨 인구 중 약 4분의 1이 이민자 출신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상대적으로 낮은 비율이다.

2015년 유럽 난민 사태 이후 140만명의 이민자가 독일에 정착하긴 했지만 대부분 부유한 옛 서독 지역으로 향했다. 반이민 시위대는 이민자 때문에 범죄율이 급증했다고 하나 지난 5월 발표된 지난해 독일 내 범죄건수는 30년 만에 가장 낮았다. 작센주 경찰은 최근 외국인 범죄가 오히려 감소세라고 보고 있다.

그렇다면 왜 켐니츠 사람들은 이민자에 분노한 것일까. 지난달 26일 켐니츠에서는 35세의 쿠바계 독일 남성 다니엘 힐리그가 각각 시리아와 이라크 태생으로 알려진 20대 범인들이 휘두른 칼에 찔려 목숨을 잃었다. 독일 반이민 단체인 페기다(PEGIDA)는 사건 이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이용해 사망 소식을 퍼뜨렸고, 독일 각지에서 이민자 추방을 요구하는 시위대가 켐니츠로 모여들었다. 여기에 독일 극우정당 '독일을위한대안(AfD)'당이 바통을 넘겨받아 조직적 선동에 나서고 켐니츠 현지 극우단체들이 호응하면서 시위대 규모는 이달 1일까지 8000명으로 늘어났다.

이번 시위는 규모나 성격 면에서 이전과는 달랐다. 물론 시위대에는 나치 깃발을 들고 나치식 경례를 하는 '진성' 극우들도 있었지만 시위대가 외친 구호는 "우리가 국민이다"였다. 이는 지난 1989년 동독 주민들이 공산정권에 대항할 때 외쳤던 구호다. DW는 켐니츠 시내에 마련된 힐리그 임시추모소에 1940년대 나치 정권에 저항하던 비폭력 학생 그룹, 백장미단의 상징인 하얀 장미가 놓여 있었다고 전했다. 켐니츠 시위는 반이민 시위를 넘어 반정부 시위가 됐다. 이민자는 현 정권의 불합리를 대표하는 상징이었다.

독일 안팎의 외신들은 이번 시위가 놀랍지 않다는 반응이다. 작센주를 비롯한 옛 동독 지역은 1990년 서독에 흡수통일된 이후 경제적으로 몰락했다. 서독은 통일 이후 2조유로(약 2611조원) 넘는 보조금을 동부에 쏟아부었지만 지난해 옛 동독 지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서부의 73%에 불과했다. 실업률 역시 서부의 2배 이상이다. 이처럼 수십년 동안 소외당한 옛 동독 주민들은 난민 사태 이후 옛 서독이 주도하는 정부가 내놓은 '퍼주기'식 이민자정책에 폭발했다. 극우 세력은 이런 지역감정을 이용해 세를 불렸다. AfD는 지난해 총선에서 전국적으로 12.6%의 지지율을 기록했지만 옛 동독에서는 20.5%의 표를 받았다. AfD의 지지율은 지난 5일 조사 결과 전국적으로 17.5%로 집계돼 제1야당인 사회민주당(사민당·16%)을 제치고 전체 2위에 올랐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같은 날 인터뷰에서 켐니츠 시위가 "명백한 증오이자 무고한 사람들에 대한 박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메르켈 총리의 기독민주당과 연정을 이루는 기독사회당의 호르스트 제호퍼 내무장관은 다음날 현지 언론을 통해 "켐니츠 시민들이 왜 이번 사건에 격분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며 "이민자가 독일에서 모든 정치적 문제의 어머니"라고 주장했다.
메르켈 총리는 조만간 켐니츠를 방문할 계획이나 이미 갈라진 민심을 다잡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최근 국내에서는 남북 간 긴장 완화로 벌써부터 통일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통일 후 28년이 지난 독일조차 아직까지 갈라져 있는 지금, 우리는 통일 이후 이뤄야 할 진정한 화합에 대해 좀 더 고민하고 준비할 필요가 있다.

pjw@fnnews.com 박종원 국제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