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에서]

보험정책, 찍어누르기가 능사는 아니다

지령 5000호 이벤트

혼자 해선 안되는 어려운 일이 있다. 협력이 반드시 필요한 일 말이다. 그 일을 해내려면 주변 부서와 협력을 해야 하는 일.

그런데 협력하기에는 껄끄러운 부서 사람들이다. 그래서 해당 부서와 협력하는 시늉만 한다. 시늉만 내니까 일은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부서 사람들이 바뀌면 또 "나는 이런 어려운 일을 해내겠다"고 공언한다. 부서 사람들은 "좋다"며 박수를 쳐준다. 그러면서 해결책으로 또 "다른 부서와 협력을 하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협력방안은 마련하지 않는다. 이런 패턴이 몇 년간 반복된다.

보험업계에서 최근 몇 년간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보험업계와 금융당국은 최근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실손보험 간편청구나 단종보험(소액간편보험) 활성화를 해내겠다고 했다. 몇 년 전부터 그랬다. 그럴싸한 얘기다. 실손보험 간편청구가 실현되면 제2의 국민건강보험으로 불리는 실손보험금 청구를 간단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종보험도 그렇다. 비행기표를 끊으면서 여행자보험에 가입하면 시간도 절약되고, 보험료도 싸진다는 게 당국의 설명이다.

이런 정책들은 보험이 어렵다, 보험금을 받는 것도 까다롭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을 위해서도 좋은 정책임이 틀림없다.

문제는 실손보험 간편청구나 단종보험 활성화가 실천되기 위한 동력이 없다는 것이다. 금융당국에서 노력을 안하는 것은 아니다. 실손보험 간편청구 실현을 위해 관계부처와 기관이 참여하는 정책협의체도 만들어졌지만 실손보험 간편청구는 몇 년째 청사진만 나오고 있다. 시간이 걸릴 수 있다. 관계부처와 업권 간 이견도 있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해와 협력 그리고 결과다. 정책을 발표한 지 3~4년이 지났다면 이해와 협력을 통해 소소하더라도 소기의 결과는 나와야 한다.

단종보험 정책도 마찬가지다. 단종보험 활성화 정책이 발표된 지 꽤 됐다. 단종보험 활성화도 국민의 이익에 부합하는 좋은 정책이다. 좋은 정책이라도 실현 가능성이 낮다면 시장의 플레이어들을 옥죄지 말아야 한다. 정부가 시장 상황을 이해하고 상황에 맞게 정책을 수정하면 된다. 필요하다면 부처 이기주의를 벗어던지고 관계부처와 협력하면 된다. 내 뒤에 있는 누구를 봐주려고, 누구를 내편으로 계속 유지시키려고 대의를 저버려서는 안된다.

정책 입안자가 아니어서 너무 단순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몇 년 전 발표한 단종보험 활성화를 이름만 소액간편보험으로 바꾼다고 시장에서 반응이 있을 리 없다. 안되는 일에는 이유가 있다.
그렇다고 안되는 일을 억지로 한다고 훌륭한 뭔가가 나오는 시대는 아니다. 시대가 변했다. 무조건 찍어누른다고 훌륭한 것이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는 점을 깨우치기를 기대한다.

ck7024@fnnews.com 홍창기 금융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