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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관 칼럼]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법령

이병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9.16 16:45

수정 2018.09.16 16:45

[차관 칼럼]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법령


중국 제나라의 재상 관중은 '관자(管子)'에서 '법은 천하지지도(天下之至道)'라고 했다. 법은 천하의 지극한 도이니 누구나 지켜야 할 것이라는 뜻이다. 누구나 지킬 수 있는 법이 되려면 가장 먼저 갖춰야 할 것은 무엇일까. 우선 법을 읽는 사람이 그 내용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오랜 기간 우리 법령은 그 내용이 대부분 한자로 표기돼 있었고, 어려운 용어와 길고 복잡한 문장 때문에 국민이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어려웠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82.5%가 법령이 어렵고 이해하기 곤란했던 경험이 있다고 한다.

국민들이 첫손에 꼽은 법령이 어려운 이유는 전문용어 등 어려운 용어였다.
알기 쉬운 법령 만들기 사업이 시작된 지 10여년이 지났지만 법제처도 전문용어에 대해서는 해당 용어가 제한적 범위에서 사용되고, 그 의미를 정확히 대체하는 순화안을 만들기 쉽지 않다는 관련 부처와 전문가들의 반대에 부딪혀 효과적으로 정비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 결과 그들만의 전문용어는 국민이 법을 넘볼 수 없도록 하는 하나의 장벽이 되고 있다. 이는 훈민정음 창제 때 세종대왕과 한자파 사대부 사이의 갈등을 떠오르게 한다. 당시 최만리를 비롯한 한자파 관료들은 양반 계층의 기득권 보호를 위해 한글 창제를 반대했다. 그들은 백성이 한글을 쉽게 배워 관직에 나오게 되는 것을 걱정했고, 한글을 알게 된 백성이 공문이나 판결문을 읽어 기득권 세력의 통치에 이의를 제기할 것을 두려워했다. 지배층인 양반 계층은 문자를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이 양반과 백성을 차별하는 신분제의 핵심 요소임을 알고 있었고, 체제 유지를 위해서 더욱 한글 사용을 반대한 것이다.

우리 법령 속의 어려운 전문용어는 당시 사대부가 쓰던 한자와 다르지 않다. 예컨대 '공무원연금법 시행규칙'에는 장해등급 판정과 관련, '사지의 단(單)마비가 인정되는 사람'이라는 규정이 있는데, 이는 '네 팔다리 가운데 일부가 마비된 사람'으로 충분히 바꿔 쓸 수 있다. 마찬가지로 '어깨관절의 경우에는 신전(伸展)·굴곡(屈曲)운동 및 외전(外轉)·내전(內轉)운동의 제한 정도에 따라 장해등급을 정하고'라는 규정은 '어깨관절의 경우에는 팔을 펴고, 굽히고, 벌리고, 모으는 운동을 할 수 있는 정도에 따라 장해등급을 정하고'로 바꿀 수 있다.이런 어려운 전문용어는 국민이 법령에 다가서는 데 장애물이 되고, 법령 내용에 대한 국민의 정당한 의견 제시를 막는다. 이는 국민의 알 권리에 대한 중대한 차별이며, 실질적 법치주의의 실현을 어렵게 한다.

이에 법제처는 올해부터 새로 만들어지거나 개정되는 모든 법령안을 검토하고 있다. 어려운 용어가 법령에 들어올 수 없도록 입법 초기 단계부터 사전에 차단하려는 것이다. 동시에 기존 법령은 2개년 정비계획을 마련, 내년까지 4400여개의 현행 법령을 전수 검토하고 그 속의 어려운 전문용어를 찾아 신속하게 정비할 계획이다.
최근에는 알기쉬운법령팀을 신설, 더욱 적극적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이 법령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것이야말로 국민을 위한 행정의 출발이라고 말했다.
어려운 전문용어 정비는 법령을 이해하고 활용할 때 전문가·공무원과 국민 사이에 발생하는 차별을 없애고, 우리 사회가 공정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김외숙 법제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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