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염주영 칼럼] 신기술을 배척하면 나라가 망한다

염주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10.01 17:28

수정 2018.10.01 17:28

금지한다고 보호막될 수 없어.. 허용하되 충격 줄이는 게 해법
안전성 규제도 지나치면 안돼
[염주영 칼럼] 신기술을 배척하면 나라가 망한다

무쇠를 다루는 기술이 한반도에 유입된 것은 BC 4세기 무렵으로 추정된다. 구리는 섭씨 1084도에서 녹지만 쇠를 녹이려면 1530도의 고온이 필요하다. 이 기술을 먼저 받아들인 철기인들은 청동기인들과 각축전을 벌였다. 철검과 청동검이 맞부딪치면 청동검이 두동강이 났다. 철기인들은 주변의 부족들을 하나둘 정복했다. 400여년간 지속된 철기와 청동기의 대결은 한반도에서 일어난 가장 치열한 기술전쟁이었다.


19세기 영국에서도 마차와 증기자동차가 기술전쟁을 벌였다. 1826년 마차가 대중교통 수단이었던 런던 시내에 증기로 달리는 노선버스가 처음 등장했다. 위협을 느낀 마부들이 증기자동차를 규제하라고 요구했다. 영국 정부는 이를 받아들여 자동차 속도를 6.4㎞로 제한하는 '붉은 깃발법'을 시행했다. 그런데도 자동차는 계속 늘어났다. 결국 이 법은 폐지됐고 70년간 지속된 대결은 자동차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1853년 4척의 흑선(미국 동인도함대 함선)이 일본 도쿄만에 들어와 개항과 교역을 요구했다. 일본은 이 요구를 수용했다. 이후 서양의 신기술을 적극 받아들여 산업혁명을 완수했다. 조선에도 흑선들이 왔지만 조선은 이들을 배척했다. 그 결과 조선은 망해 일본의 식민지가 되는 아픔을 겪었다.

신기술에는 파괴적 속성이 있다. 기존 기술이 만든 기득권 사슬을 일거에 무너뜨린다. 그러나 이보다 훨씬 더 큰 부가가치 사슬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유익하다. 기득권층에는 피해를 주지만 나라 전체로는 이로운 것이 신기술이다. 따라서 규제를 풀 것이냐, 말 것이냐는 논쟁거리가 될 수 없다. 규제를 풀되 어떻게 하면 기득권층의 피해를 줄일 수 있느냐가 논쟁거리가 돼야 한다.

안전성 규제는 필요하지만 안전의 범위를 넘어서는 과도한 규제를 해서는 안된다. 붉은 깃발법도 출발은 안전성 규제였지만 점차 자동차 보급을 막는 수단으로 변질됐다. 몇 번의 개정을 통해 강화된 규정 중에는 '증기자동차는 증기를 내뿜어 말을 놀라게 해서는 안된다'는 조항도 있다. 증기자동차가 증기를 내뿜지 못하면 다니지 말라는 말과 같다. 이처럼 안전성 규제는 기득권 보호 수단으로 변질되기 쉽다.

문재인 대통령이 신기술에 대한 규제 문턱을 낮추기 위해 현장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그럼에도 성과는 지지부진하다. 겨우 인터넷은행이 규제 문턱을 넘었을 뿐이다. 안전을 내세워 신기술, 신산업 자체를 금지해서는 안된다. 현행법의 원격의료 금지는 자동차가 위험하니 자동차 생산을 금지하자는 것과 같다. 사고를 줄이기 위해 운전면허 발급을 좀 더 까다롭게 하자는 건 이치에 맞다. 그러나 아예 자동차를 생산하지 말자고 하는 것은 지나치다.

'위험한 신기술은 금지한다'가 아니라 '신기술은 위험해도 허용한다'가 정책의 기본 방향이 돼야 한다. 원격의료, 빅데이터 이용, 차량이나 숙박 공유, 드론, 블록체인 관련 산업들은 4차 산업혁명의 거대한 흐름 가운데 일부다. 하지만 아직도 규제에 갇혀 있다. 정부는 혁신성장을 하겠다면서도 변죽만 울리고 있다.
이런 식으로는 4차 산업혁명 흐름에서 또다시 낙오하지 않겠는가. 신기술 정책 수립은 국가의 흥망성쇠라는 관점에서 봐야 한다.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한국은 기술전쟁에서 승자가 될 수 없다.
신기술 정책이 가야 할 기본 방향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y1983010@fnnews.com 염주영 논설위원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