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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문순의 이슈 들여다보기] ‘한국판 엘리엇’ 등장 예고… 차등의결권 등 기업에 방패 필요

강문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10.04 17:20

수정 2018.10.04 17:20

사모펀드 규제 완화 10%룰 족쇄 풀어준 정부
기업은 경영권 방어 비상 스튜어드십코드 등 이중고
포이즌필 등 방어수단 절실 관련법은 수년째 국회 계류
[강문순의 이슈 들여다보기] ‘한국판 엘리엇’ 등장 예고… 차등의결권 등 기업에 방패 필요

정부가 최근 사모(私募)펀드에 대한 규제를 대폭 푸는 방안을 내놨다. 어떤 형태의 사모펀드라도 10% 이하의 소수 지분만을 가지면 기업 경영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규제를 풀어 혁신성장과 자본시장 활성화를 꾀한다는 취지다. 물론 옳은 방향이다. 하지만 기업들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한국판 엘리엇'이 등장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가뜩이나 기업들은 스튜어드십코드(기관투자자의 의결권 행사 지침) 도입과 대주주의 힘을 빼는 상법개정안 등으로 경영권 방어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업계에서는 차등의결권 등 경영권 방어수단을 함께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강문순의 이슈 들여다보기] ‘한국판 엘리엇’ 등장 예고… 차등의결권 등 기업에 방패 필요

■'한국판 엘리엇' 등장 우려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28일 국내 사모펀드가 기업 경영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터주는 방향으로 관련 규제를 개편해 연내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사모펀드는 소수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모아 비공개로 운영하는데 그동안 국내 사모펀드는 각종 규제에 묶여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게 사실이다. 경영참여형(PEF)과 전문투자형(헤지펀드) 펀드 가운데 PEF는 펀드자산 10%까지만 주식을 살 수 있고 헤지펀드는 10% 이상 살 순 있지만 그 이상에 대해서는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도록 한 '10% 룰'이 대표적 족쇄다.

앞으로는 헤지펀드와 PEF의 영역 구분이 없어지고, 어떤 형태의 사모펀드라도 10% 이하의 소수 지분만을 갖고도 기업 경영에 참여할 수 있다. 주주행동주의 펀드가 국내에서도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투자수익을 극대화하는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속성상 국내 사모펀드라고 해서 엘리엇, 론스타 같은 해외 사모펀드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언제든지 기업사냥꾼으로 돌변할 수 있고, 심지어는 해외 펀드와 결탁해 국내 기업의 경영권까지 위협하지 말란 법이 없다.

■대주주 지분율 낮은 기업 '비상'

기업들은 적대적 인수합병(M&A)에 경영권 방어에 비상이 걸렸다. 특히 대주주 지분율이 10% 미만인 일반기업은 물론 순환출자 등을 통해 경영권을 유지 중인 중견그룹, 유보율이 높은 대기업들이 사모펀드의 경영간섭 내지는 M&A 타깃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일부 행동주의 펀드의 경영간섭과 경영권 위협이 반복되고 있는 상황에서 기관투자가 목소리가 더욱 커진다면 기업의 경영활동은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근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가들이 주주권리를 적극적으로 행사해 경영에 간여할 수 있도록 스튜어드십 코드까지 도입된 터라 기업 경영권 방어는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 가뜩이나 국회에는 대주주의 힘을 빼는 상법개정안이 여럿 올라와 있다. 모회사 주주가 불법행위를 한 자회사나 손자 회사 임원에 손해배상 소송을 낼 수 있게 한 다중대표소송과 2인 이상의 이사를 선임할 때 소액주주들이 뭉쳐서 원하는 이사를 선임할 수 있는 집중투표제 의무화 등 경영진 견제 수단이 상법 개정안에 대표적이다.

실제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대 국회 개원 이후 올해 3월 말까지 발의된 기업지배구조 관련 상법 개정안(20건) 가운데 경영권 제한 조치를 담은 개정안은 18건인 반면 경영권 보호장치에 초점을 둔 발의안은 2건에 그쳤다.

■경영권 방어 '방패'도 줘야

한국상장회사협의회 등 경제단체들은 "차등의결권 등 기업 경영권 방어수단을 함께 도입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사모펀드 규제완화에 맞춰 기업에도 경영건 방어를 위한 방패를 줘야 한다는 얘기다.

포이즌필과 더불어 효과적인 방어 장치로 '차등의결권 주식'이 꼽힌다. '1주 1표'가 아니라 대주주나 경영진에 일반 주식보다 더 많은 의결권을 주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이나 페이스북 등은 창업자들이 1주당 10표의 의결권을 갖고 있다.

하지만 관련 법 개정은 '오너 일가에 대한 특혜'라는 반(反)기업 정서와 정치권의 반대 속에 수년째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김종선 코스닥협회 연구정책본부장은 "경영권을 위협하는 도구가 한꺼번에 도입되는 만큼 멀쩡한 기업이 기업사냥꾼의 먹잇감이 되는 일이 없도록 경영권 방어를 위한 장치도 함께 마련해주는 게 형평에 맞다"고 지적했다.

mskang@fnnews.com 강문순 자본시장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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