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화두로 떠오른 동물권 보호] "반려견 살 잘라버린 동물병원 간식 몇봉지 주고선 나몰라라"

김유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10.10 17:01

수정 2018.10.10 17:01

동물병원 의료사고 사각지대
반려동물 인구 1000만 물건 취급하는 법이 문제
[화두로 떠오른 동물권 보호] "반려견 살 잘라버린 동물병원 간식 몇봉지 주고선 나몰라라"


#. 울산에서 거주하는 김희정씨(30·여)는 지난달 말 동물병원에 반려견 '모찌'의 미용을 맡겼다가 변을 당했다. 원장이 가위로 다리쪽 털을 자르던 중 실수로 모찌의 살까지 잘라버린 것이다. 김씨에게 연락도 하지 않고 모찌의 살을 꿰매 둔 병원 측은 "미안하다"며 반려견용 간식을 두어개 건넬 뿐이었다.

동물병원에서 벌어지는 의료사고에 대한 처벌 또는 배상 기준이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아 피해 가족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반려동물 인구가 1000만을 넘어서면서 동물병원에 대한 수요도 늘어나는 만큼 관련 제도 정비가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0일 민법에 따르면 반려동물과 같은 유체물은 개인의 재산으로 인정된다.
이 때문에 반려동물은 생명이 아닌 물건으로 여겨져 의료사고 발생 시 과실치상 또는 과실치사를 적용하기 어려운 상태다.

■반려동물 죽음에 병원은 "나 몰라라"

일례로 지난 추석 연휴 동안 해외여행을 갔던 임나영씨(가명)는 귀국과 동시에 비보를 접했다. 입원 차 동물병원에 맡겼던 10살 반려견 '뿌꾸'가 숨을 거뒀기 때문이다. 추석 연휴 동안 병원 문을 닫았다는 원장의 말은 나영씨를 더욱 분노케 했다. 가뜩이나 뿌꾸의 건강 상태가 썩 좋지 않다는 진단을 받은 터라 병원은 더 세심히 돌보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원장이 연휴 중 잠깐 병원에 들렀을 때 뿌꾸는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나영씨는 사건 발생 즉시 경찰에 신고했으나 '도와줄 방법이 없다'는 대답만 들었다. 법적으로 배상 의무가 없다고 판단한 병원 측은 뿌꾸의 장례식 외에는 어떤 지원도 하지 않았다. 나영씨가 폐쇄회로(CC)TV와 진료기록지 공개를 요청했지만 병원 측은 이를 들어주지도 않았다.

나영씨는 "병원이 뿌꾸를 방치해 치사한 건 아닌지 확인할 길도 없어 억울하다"며 "피해자가 직접 의료사고에 대한 증거를 모아야 하는데 CCTV 자료 확보도 어렵다"고 토로했다. 이어 "아직까지도 이 나라에서 반려동물 가족으로 사는 건 참 힘든 일"이라며 "동물병원이 동물을 학대하거나 방치하지 않았는지 피해 가족이 확인할 수 있도록 CCTV 의무공개 등 관련 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물건' 취급하는 현행법 바뀌어야"

현재는 동물병원에서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병원이 피해 가족에게 사후 비용을 청구하지 않는 등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국동물병원협회 허주형 회장은 "현행법상 반려동물은 물건으로 규정돼 있다 보니 내부적으로 의료사고 배상 기준을 마련한다 하더라도 법적 효력을 띨 수 없다"고 지적했다.


결국 동물병원 의료사고로 억울한 피해 가족이 생기지 않으려면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동물보호단체 동물해방물결 이지연 대표는 "동물의 의료사고 처벌 또는 배상에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은 반려동물을 물건으로 취급하는 현행법"이라며 "의료사고 관련 법이 적용되는 사람의 경우에도 구제가 쉽지 않은데 동물의 경우는 더욱 어렵다고 봐야 한다"고 전했다.
그는 "사람과 동물의 건강 상태가 연결돼 있다는 '원헬스'개념도 부상하는 만큼 동물에 대한 의료시스템도 구체화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kua@fnnews.com 김유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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