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덜 먹고 덜 입으면 누군가 도울수 있겠더라고"

[감동시리즈-우리함께]<12>폐지·고철 모아 25년간 쌀 2000포대 기부한 김춘선씨

김춘선씨는 매일 아침 7시 손수레를 끌고 집을 나가 폐지와 고철을 수집한다. 사진=박범준 기자
김씨가 폐지와 고철을 모으는 이유는 밥을 굶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다. 사진=박범준 기자

벌써 25년째.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김춘선씨(76)는 매일 아침 7시가 되면 집을 나선다. 손수레를 끌고 그가 살고 있는 인천 주안동을 한바퀴 돈다. 주민들이 지난 밤 버린 폐지와 고철을 모으기 위해서다. 행여 주위에 흔히 볼 수 있는 여러 폐지 줍는 노인들과 비슷해 보이나 그는 목적이 다르다. 하루에 고물 100㎏을 모으면 받을 수 있는 돈이 5000원. 1년에 이 일로 버는 돈은 180만원 남짓이다. 그는 이 돈을 모아 1년 중 설과 추석 때 두 번씩 이웃을 위해 쌀을 사 동네 주민센터(행정복지센터)에 기부한다. 올해만 해도 설과 추석에 60포대씩 해서 총 120포대를 인천 주안3동과 주안7동 주민센터에 전달했다.

김씨는 이렇게 모은 폐지와 고철을 팔아 매년 설과 추석에 두 차례씩 쌀을 기부해왔다. 지난 25년간 김씨가 기부한 쌀은 2000포대가 넘는다.
■25년간 쌀 2000포대 기부

"1993년부터 이 일을 시작했으니 벌써 25년이 됐네." 1942년 주안동에서 나고 토박이로 계속 한자리를 지켰다는 그는 역경 많은 시대 속에서 묵묵히 일하면서도 주위 사람들의 어려움을 봤다. "나도 아무 것도 없이 힘들게 살았는데 1974년부터 1998년까지 고물상 일을 해서 그래도 두 아들 장가까진 보냈어요. 고물상 일이 성실히 하면 먹고는 살아요. 근데 또 이 일을 하다보면 동네를 계속 돌아다녀야 하거든. 돌아다니면서 보니까 밥도 못먹고 사는 사람이 제법 많은 거에요. 그래서 내가 좀 덜 먹고, 덜 입고 하면 누군가를 도울 수 있겠다 싶더라고."

처음에는 작은 측은지심이었다. 쌀을 조금씩 사서 있는 대로 도와줘야지 싶었다. 그런데 이를 알고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나중에는 돈도 조금씩 부쳐줬다. "옛날에 5만원씩 4명한테 지원을 했어. 근데 이 사람들이 거르면 나중에는 왜 안주냐고 하더라고. 그리고 또 돈으로 주니 정말 먹는데 안쓰고 다른데 쓰기도 하고 그러더라고. 이건 아니다 싶었어요."

아는 누군가에게만 도움을 몰아주는 것도 좋은 방법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작지만 고루고루 나눠주고 싶어 동사무소를 찾아가 쌀을 대신 전달하게 했다. "내가 모르는 사람 중에도 어려운 사람이 더 많을 거 아니에요. 지금은 이걸 누가 받는지도 몰라요."

처음에는 설, 추석 연휴에 세 포대씩 기부하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연간 120포대를 기부하게 됐다. "원래 지난 추석에는 80포대를 하고 싶었는데 요새 쌀값이 워낙 많이 올라서…."

지금껏 그가 기부한 쌀의 양만 해도 2000포대가 훨씬 넘는다. 기부된 쌀은 지역 내 불우한 이웃에게 전달된다. 주로 생계가 어렵지만 연락이 두절된 자녀들 때문에 정부지원금을 받지 못하는 노인 등이 대상이다.

"진짜 동네 한바퀴만 돌면 아직도 밥 못먹는 사람이 부지기수인데 이런 사실을 대통령도 모르더라고."
아내 원옥련씨(오른쪽)는 김춘선씨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다.
■'300원 냉장고 아저씨'의 못말리는 선행

처음에 주민센터에 기부를 할 당시 그는 이런 사실이 세간에 알려지지 않기를 원했다. 하지만 20년 넘게 쌓인 꾸준한 선행은 결국 입소문이 났고 그는 지난 2016년 '모범 선행 시민'으로 선정돼 인천시장 표창을 받았다. "예전엔 주변 사람들이 잘 모르고 해서 남의 것 주워간다고 멱살잡이를 당한 적도 있었어요. 동장님이 해명해줘서 풀려난 적도 여러 번이에요."

하지만 그의 마음 속에는 아직도 더 많은 사람들을 도와주지 못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더 컸다.

미안한 마음에 그는 옛일을 떠올렸다. 한 번은 길거리에 놓인 냉장고를 주인이 없는 줄 알고 고철로 팔았다가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당시 그가 냉장고를 팔아 받은 고철값은 300원에 불과했지만 주인의 항의에 80만원을 물어달라는 말을 들었다. 나중에 김씨가 선행을 하기 위해 그렇게 했다는 사실을 알고 냉장고 주인이 이해를 해줘서 가까스로 무마가 됐다. 이후 김씨는 동네에서 '300원 냉장고 아저씨'라는 별명을 얻게 됐다.

■"고맙습니다"라는 말 꼭 하는 이유

고물상 일을 그만둔지도 20년인데 여전히 이 일을 하고 있으니 가장 걱정스러워 하는 것은 그의 아내 원옥련씨(69)다. 이제 나이가 여든살이 가까워 오는데 매일 밖으로 나가서 험한 일을 하니 건강이 상할까 걱정을 섞어 타박도 하지만 그를 가장 자랑스러워 하는 이도 그의 아내다.

"저야 뭐 이제는 나이 들어서 놀기도 심심하고 하니 리어카 끌고 다니는 거죠"라고 김씨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내가 너무 험하고 때로는 집 앞 마당도 더러워지고 해서 내일이라도 그만했으면 한다고 말하지만 이거 하다보니 오히려 나는 건강을 다시 얻었어요."

매일 운동삼아 하는 봉사 덕분에 엊그제까지도 허리가 아팠는데 오늘부터 깨끗이 나아졌다고 말하며 그는 "아무래도 남을 도우니 나은 것 같다"고 했다. "친구들은 벌써 다 가고 없어요. 술도 안마시고 담배도 세 갑 피우다 끊고 하니까 하늘에서 불우이웃 돕기 힘 닿는데까지 하고 오라고 또 건강해지게 하나봐요. 하하."

매일매일 반복되는 폐지와 고철 줍기지만 혹 누군가가 그에게 직접 손으로 고물을 전해 줄 때마다 그는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꼭 전한다고 했다.

"무얼 주고 받더라도 정답게 주고 받아야죠. 훅 던지며 무시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럼 못써요. 가끔 무시하고 얕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이걸 그냥 나한테 주는 게 아니라 어려운 이웃에게 주는 거라고 생각해. 그래서 꼭 고맙다는 말을 합니다."

"내가 한 살이라도 더 젊었으면 더 다양한 방법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이 있었을텐데 이제 팔십을 바라보게 돼 아쉽다"는 김씨는 "처음에 쌀 기부를 할 때는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하고 밑빠진 독에 물 붓는 것처럼 힘들 때도 있었는데 어느날 주민센터에서 전달식을 하고 뒤를 돌아보는데 마치 부자가 된 느낌이 들면서 벅찬 기분이 들었다. 이런 기분은 아무나 느낄 수 없는 것인데 다른 이들도 함께 돕는 일에 나서서 같은 마음을 느껴봤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이 일을 하면서 사람들의 밑바닥도 보게 됐다.
잘 사는 것 같지만 잘 못사는 사람도 있고, 잘 못 사는 것 같지만 잘 사람도 있는데 어떤 마음을 갖고 사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며 "마지막 순간에 창피하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고 다른 이들도 이런 걸 깨달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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