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균기자의 현장클릭>전인지의 소망 '모두가 잘 어우러진 따뜻한 환경'은 진정 요원한가

'가을의 유혹'으로 불리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KEB하나은행 챔피언십은 '덤보' 전인지(24·KB금융그룹)의 25개월만의 감격스런 우승으로 화려한 막을 내렸다.

전인지는 우승이 확정된 순간 참았던 눈물을 펑펑 쏟아내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눈물의 의미가 우승의 기쁨보다는 힘들었던 지난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났기 때문이라는 건 이어진 인터뷰를 통해 알 수 있었다. 다소 상기된 표정으로 프레스 룸에 들어선 전인지는 기자들의 쏟아지는 질문에 답했다. 차분하게 많은 말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그것은 상당히 절제돼 있었다.

그가 한 말을 키워드로 정리해보면 '감사, 악플, 나빠진 정신 건강, 그리고 할머니'였다. 기나긴 부진에도 불구하고 응원과 관심을 보내준 팬들에 대한 감사의 말을 먼저 꺼낸 전인지는 '악플이 부진 이유였나'는 질문에 "부인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정신적으로 상당히 힘든 시기를 보냈다고 했다. 주변의 위로가 잇따랐다. 하지만 그런 선의마저 곧이 곧대로 받아 들이지 못한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러고는 스스로를 자책했다. 그런 악순환이 반복됐다.

분명 20대 중반의 어린 선수가 감내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런 그를 일으켜 세워준 것은 가족이었다. 그것도 병상의 할머니였다. 전인지에게 할머니는 엄마와 같은 존재였다. 어린 시절 어려운 가정 형편에 부모가 생계활동을 하느라 할머니와 보내는 시간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고로 병석에 누운 할머니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녀딸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병세가 악화돼 있다.

할머니의 사고 소식을 접하자마자 단걸음에 병실을 달려간 전인지는 그곳에서 할머니가 독백처럼 내뱉은 '건강해야 한다'라는 말을 들었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했다. 정신적으로 나락에 떨어진 손녀를 다잡아주기 위해 혼신을 다해 내뱉은 할머니의 '훈계'로 들렸기 때문이다. 전인지는 그 이후 스스로를 다잡아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주 여자골프 국가대항전 UL인터내셔널 크라운에서 4승을 거둬 팀코리아의 우승을 견인하면서 스스로 터닝 포인트를 마련했다.

전인지가 지난 2년여간 겪었던 마음고생은 그릇된 '팬덤문화'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이는 비단 전인지에게만 국한된 얘기는 아니다. 인기 상종가인 국내 여자골프에서 쉽지 않게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이번 대회에는 나흘간 6만8047명(대회조직위 집계)의 갤러리가 경기장을 찾았다고 한다. 출전 외국인 선수들은 말할 것도 없고 해외 언론들도 그 열기에 깜짝 놀랬다. 미국의 골프채널은 한국에서의 여자골프 인기는 세계 여자 골프 발전의 '오아시스'라고 치켜 세웠다.

그러나 그 인기의 이면에서 암약하고 있는 일부 극성팬들의 그릇된 행동은 마땅히 지탄받아야 한다. 내가 좋아하지 않은 선수를 배타시 하는 풍조 말이다. 그래서일까, "상대선수를 깎아내리기 보다는 같이 응원하고 모두가 잘 어우러져서 모두가 잘되는 따뜻한 환경을 만들었으면 한다"는 전인지의 간절한 바램이 오랫동안 귓전을 맴돈다.

golf@fnnews.com 정대균 골프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