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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논단] 포노사피엔스 시대, 시장의 왕은 소비자

안삼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10.17 16:56

수정 2018.10.17 16:56

[fn논단] 포노사피엔스 시대, 시장의 왕은 소비자


카카오가 카풀 서비스를 실시한다고 발표하자 택시업계가 발칵 뒤집혔다. 생존권을 위협하는 대기업의 골목상권 침해라며 파업까지 예고하고 있다. 한 기사에 잡힌 사진 속에는 플래카드를 두른 택시가 나오는데 이렇게 적혀 있다. '카풀 규제완화 택시산업이 죽어간다, 문재인 대통령님 택시 살려주세요' 택시 산업계는 자기를 살려줄 사람이 대통령이고, 이 나라 정부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틀렸다. '시민 여러분 살려주세요'라고 써야 한다.
지금 시장의 왕은 소비자다.

카카오 카풀의 출발점이 된 우버는 포노사피엔스 시대의 상징과도 같다. 2009년 설립돼 2010년 서비스를 시작한 이 회사는 설립 당시 택시에 큰 위협이 될 줄 몰랐다. 기존의 택시는 누구나 손만 들면 탈 수 있는 데다 아무런 도구도, 사용법에 대한 교육도 필요없다. 반면 우버는 스마트폰 사용자만 탈 수 있고 애플리케이션(앱)을 내려받아 스스로 설치하고 사용법도 배워야 한다. 그러니 애초에 경쟁이 될 수 없다고 봤다. 누가 귀찮게 그 어려운 일을 하려고 하겠는가. 그런데 스마트폰 사용과 함께 재밌는 게임에 중독됐던 젊은 세대들은 이 게임방식의 택시를 재미있어했다. 운전자도 소비자도 모두 스마트폰 사용자였고, 게임을 즐기는 이들이었다. 색다른 경험은 즐거움을 선사했고, 즐거움은 곧 SNS를 타고 번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불과 3년 만에 택시를 위협하는 존재로 성장했다. 미국에서도 택시업계의 소송이 시작됐고, 2014년 미국 연방대법원에서는 우버는 시민을 위한 혁신적이고 새로운 운송서비스라고 합법을 인정했다. 이후 전 세계 300개 도시로 퍼져 나간 우버는 이제 전 세계 새로운 모빌리티 서비스의 상식이 됐다. 중국은 디디추싱이, 동남아는 그랩이 이제 개인 이동수단의 표준이 되고 있다. 그런데 이 서비스는 스마트폰 사용자, 즉 포노사피엔스가 아니면 탈 수 없다. 그래서 우버는 포노사피엔스 시대의 상징이라고 하는 것이다.

폰을 든 인류는 우버를 경험하고는 안타깝게도 택시를 잊어버렸다. 어느 누구도 강요할 수 없는 이 선택이 우버를 73조 기업(현재 시장가치)으로 만든 것이다. 디지털 소비문명 확산 방식은 이와 유사하다. 스마트폰 뱅킹으로 송금을 해본 사람이라면 그 편리함이 뇌에 각인되고, 그동안 습관화됐던 은행 가서 송금하던 방식은 금방 잊어버리게 된다. 그리고는 '송금'이라는 생각이 들면 무의식적으로 폰을 열게 되는 것이다. 택시기사분들에게 묻고 싶다. 은행이 위험하니 스마트폰 뱅킹을 막아달라고 '문재인 대통령님 살려주세요'라는 플래카드를 걸면 어떻게 바라보겠는가.

4차 산업혁명으로 불리는 시장혁명의 본질은 인류의 변화다. 인류의 표준이 스마트폰을 든 인류(포노사피엔스)로 바뀌면서 사회의 모든 기준이 바뀌는 현상이다. 이제 시장의 권력은 대통령이 아니라 소비자가 갖고 있다. 선택을 받으면 살고 그렇지 못하면 소멸된다. 생존하려면 '소비자님 살려주세요'라는 마음으로 진심을 담아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어내야 한다. 분노로 가득찬 댓글이 왕의 메시지다. 세계 곳곳을 다니며 우버, 디디추싱, 그랩의 편리함을 경험한 소비자들은 불편하고 불친절한 지금의 택시문명을 그대로 유지할 생각이 없다. 그리고 이 소비자들도 모두 혁명적 변화에 당황하고 고통받으며 생존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시민의 선택으로 시작된 혁명은 과격하고 잔인하며 언제나 그랬듯 막을 수도 없다. 그래서 무서운 거다.
지금 시장은 역사상 가장 무서운 왕을 모시고 있다.

최재붕 성균관대 기계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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