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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트뤼도의 실험 '대마초 합법화'

서혜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10.19 17:44

수정 2018.10.20 12:07

[월드리포트]트뤼도의 실험 '대마초 합법화'


10여년 전 어느 컴컴한 저녁, 캐나다 캘거리의 버스 정류장에 서 있는데 노숙자 한 사람이 슬그머니 다가와 조용히 말을 건넸다. "위드(대마초) 필요하세요?(Do you need weed?)" "아니요(No!!)"라는 말을 내던져놓고 때마침 도착한 버스에 도망치듯 올라탔다. 버스 의자 사이에 구겨져 있는, 누렇게 쪼그라든 대마초 한 개비가 눈에 띄었다.

이번주 캐나다에서는 기호용 대마초 거래가 전면 합법화됐다. 캐나다 역사상 95년 만이다. 세계적으로는 지난해 우루과이에 이어 두번째이며, 주요 7개국(G7) 중에서는 처음이다.
캐나다에서 의료용 대마초는 이미 지난 2001년 합법화됐다.

지난날 버스 정류장에서 만난 노숙인처럼 은밀히 다가와 대마초 거래를 제안하는 풍경은 이제 캐나다에서는 찾아볼 수 없게 됐다. 대마초 소매점에 들러 언제든 자유롭게 대마초를 구매할 수 있고, 집에서 직접 대마를 키울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이날부터 캐나다 전역에서 최소 11개 기호용 대마초 소매점이 영업을 시작했다. 당분간은 말린 잎이나 씨앗, 캡슐, 용액 형태로 판매되겠지만 내년에는 마리화나 성분이 들어간 식품·농축액 판매도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캐나다 대마초 합법화의 가장 큰 공신은 쥐스탱 트뤼도 총리다. 대마초 합법화를 연방 선거공약으로 내세운 지 3년 만이다. 캐나다 언론에서는 이번 대마초 합법화를 '쥐스탱의 승리'라고 부르고 있다. 캐나다는 2001년부터 의료용 마리화나를 합법화했으나 기호용 대마초 합법화를 두고는 진통이 많았다. 그러다 트뤼도 총리 취임 이후 관련 논의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트뤼도의 전폭적 지원하에 캐나다 의회 내 '대마초 합법화 및 규제에 관한 태스크포스'가 마련됐고, 지난해 4월 '대마초 법안'이 의회에 제출됐다. 이 법안은 지난 6월 의회를 통과해 17일 발효됐다. 트뤼도 총리는 지난 2014년 자유당 당지도부 선거에서 처음 대마초 합법화를 약속했고, 2015년 연방 선거에서 대마초를 금지해 불법거래를 키우는 대신 규제와 세금을 매겨 양성화하자고 주장했다. 트뤼도 총리는 과거 5~6차례 대마초를 피운 경험이 있고, 그중 한 번은 의원 시절이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그러나 절대로 대마초를 즐긴 적은 없다고 말했다. 대마초 합법화가 시작된 지난 17일에도 대마초를 피울 생각이 전혀 없다며 자신은 카페인이 들어 있는 커피조차 마시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런 그가 마리화나 합법화를 밀어붙인 이유는 캐나다의 대마초 금지정책이 실패했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미 근절할 수 없는 수준이니 양지로 끌어내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트뤼도는 대마초 금지정책이 결과적으로 아이들을 보호하지 못하고 매년 수백만달러를 범죄집단에 갖다 바치고 있다고 비판해왔다.

캐나다 국가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대마초 사용 경험이 있는 캐나다 국민은 490만명이며 국민 1인당 20g의 대마초를 소비했다. 암환자를 포함해 33만명이 관련 자격증이 있는 생산업체에 등록해 대마초를 공급받고 있다. 캐나다 보건당국은 대마초 합법화로 "소비자들이 합법 시장으로 옮겨갈 것으로 믿는다"고 밝혔다.

그러나 우려의 시선도 적지 않다. 대마초를 합법화하더라도 판매규정 및 공급 부족 등으로 암시장이 사라지긴 힘들고, 대마초 소비를 오히려 부추길 것이란 지적이다. 캐나다는 이번에 만 18세 이상이면 누구나 대마초를 재배·소지·소비할 수 있도록 하면서도 개인 소지량은 30g, 재배는 4그루 이하로 제한했다.
또한 대량생산 및 판매는 별도 허가를 받도록 했다.

캐나다는 정부가 대마초산업을 안정하게 규제·관리할 수 있는지 여부를 가늠할 실험장이 됐다.
성공 여부에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sjmary@fnnews.com 서혜진 국제부 기자 sjmary@fnnews.com 서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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