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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스트리트] 삼성고시

정훈식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10.22 16:55

수정 2018.10.22 16:55

'고시'는 고등고시(高等考試)의 줄임말이다. 원래는 행정고시, 외무고시 등 고급공무원 임용시험을 말하지만 공무원 임용시험 전체를 아울러서 쓰기도 한다. 그래서 옛날 벼슬(관직)에 오르기 위한 과거시험에 비유된다. 고시는 예나 지금이나 출세길이다. 시쳇말로 계층사다리다. 합격만 하면 많은 권한(권력)과 함께 명예를 보장받을 수 있는 신분상승의 통로다.
대신 고시를 통과하기는 바늘구멍을 뚫는 것만큼이나 힘들다.

언제부턴가 대기업 입사시험도 고시로 불린다. 대표적인 것이 국내 최고의 대기업인 삼성 입사자격시험(직무적성검사·GSAT)이다. 삼성은 1995년 대졸 신입사원 공채에 삼성만의 채용문화를 담은 SSAT를 선보였다. 2015년부터는 학습능력, 문제해결 능력 등 직무 전반의 능력을 평가하는 GSAT로 업그레이드했다. 글로벌 기업답게 종전의 SSAT에서 글로벌 업무능력을 강조했다. 삼성은 GSAT를 매년 상·하반기 신입사원 공채, 인턴사원 채용 등에 활용하고 있다.

GSAT를 벤치마킹해 현대차가 HMAT, CJ는 CAT를 도입하는 등 많은 대기업들이 자기만의 색깔을 담은 직무적성평가를 한다. 이렇게 민간기업 자격평가를 고시로 일컫는 것은 대기업 입사시험이 이젠 사법시험이나 행정고시에 버금가는, 그 이상의 명예와 부와 자부심을 주기 때문일 게다.

지난 21일 치러진 삼성고시에서 '토사구팽'이 시험문제로 나와 눈길을 끈다. 토사구팽에 등장하는 동물이 무엇인지를 수험생에게 물었다. 정답은 토끼와 개다. 토사구팽(兎死狗烹)은 '토끼사냥이 끝나면 쓸모가 없게 된 사냥개를 삶아 먹는다'는 뜻의 중국 고사다. 필요할 때는 잘 쓰고 필요가 없어지면 내팽개친다는 의미다. 고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정치역정을 빗대는 말로도 잘 알려진다. 김 전 총리는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과 '3김 시대'를 이끌며 2대(14대·15대)에 걸쳐 정권 창출에 결정적으로 기여했지만 집권 정부에서 공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밀려났다.
이를 두고 토사구팽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삼성고시는 현대판 출세길임은 분명하다.
삼성고시와 같은 민간 고시가 많이 나와 더 많은 청년들이 좋은 일자리를 얻고 신분상승으로 이어졌으면 좋겠다.

poongnue@fnnews.com 정훈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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