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김관웅의 사람과 세상]세계 패권국과 차

김관웅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10.23 17:24

수정 2018.10.23 18:01

[김관웅의 사람과 세상]세계 패권국과 차


미국과 중국이 세계 패권을 놓고 한바탕 격돌을 벌이고 있지만 결국 인류 역사 관점에서는 작은 소동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이 '대륙 굴기'를 외치며 조만간 미국을 누르고 세계 패권국가에 오르겠다는 야심찬 선언을 했지만 공연히 미국의 심사만 건드린 꼴이 됐다. 트럼프의 미국이 대규모 무역제재를 비롯해 본격적인 압박을 예고하자 중국 경제가 휘청대기 시작했다. 미국으로선 아직 시작도 안했다는 반응이지만 중국은 벌써 그로기 상태까지 몰리고 있다. 중국은 세계 패권국가 등극은커녕 이제 경제 파산까지 걱정해야 할 판이다.

세계 패권국가는 로마시대 이후로 중국이었다.
이어 영국, 미국의 순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묘하게도 이들 패권국가의 등장과 발전, 몰락은 차와 인연이 아주 깊다. 황하문명을 일구며 수천년 동안 아랍과 서양에 인류 첨단문물을 전수하던 중국이 세계 패권을 잃게 된 계기도 차 때문이었다. 또 영국이 패권을 내려놓게 된 단초도,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을 탄생시킨 사건도 바로 차에서 비롯됐다.

중국 윈난성이 원산지인 차는 2000년이 넘게 중국을 무역시장에서 항상 절대우위로 만들어줬다. 인류 문물의 절반 이상이 중국에서 발명되고 발전했지만 그중에서도 차는 수익성이 가장 좋은 수출품이었다. 1500년대 이후 유럽의 귀족과 상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중국의 차는 1700년대 산업혁명이 확산되자 유럽 경제를 아예 집어삼켰다. 근로자들이 근로시간 중간에 귀족의 전유물인 차를 마시는 게 가장 큰 복지혜택으로 여겨지면서 모든 유럽인이 차를 마시기 시작한 것이다. '티타임(Tea Time)'이란 말이 여기서 나왔다. 유럽이 신대륙에서 약탈과 착취를 통해 얻은 금과 은이 중국의 곳간에 차곡차곡 쌓였다. 그러나 이 차는 중국에 비수가 돼 돌아왔다. 무역역조에 허덕이던 영국이 아편으로 반격을 시작한 것이다. 영국이 인도 벵골주에서 아편을 들여오기 시작해 1818년에는 값이 저렴하면서 강력한 효과를 내는 파트나를 중국에 뿌리자 중국 곳간의 은은 다시 인도를 거쳐 영국 금고에 들어앉았다. 이는 결국 중국 정부가 아편을 실은 영국의 배를 불태우면서 아편전쟁이 시작됐고 두 차례에 걸쳐 굴욕적인 패배를 당한 중국은 마침내 세계 패권을 영국에 넘겨줬다. 영국도 차로 인해 세계 패권을 잃었다. 바로 '보스턴 차 사건'을 통해 미국이라는 거인을 탄생시켰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미국이 영국의 식민지 시절이던 1773년 영국 정부가 미국인들이 즐겨 마시던 홍차에 과도한 세금을 매기자 미국인들이 항의의 표시로 보스턴 항구에 정박해 있던 영국 상선에 올라가 차 상자들을 모두 바다에 던져버린 사건이다. 이는 영국 정부와 보스턴 주정부의 갈등을 넘어 미국 독립운동의 시발점이 됐다. 이후 영국은 두 번의 세계대전을 치르며 새로운 거인으로 부상한 미국에 떠밀려 세계사 밖으로 퇴장하게 된다.


호사가들은 만일 보스턴 차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미국은 세계 패권국이 아니라 영국 연방의 힘없는 속국으로 살고 있을 수도 있다고 말하고 있다. 세계인의 기호식품인 차는 이처럼 근대 세계사의 물줄기를 바꿨다.
훗날 미국 다음의 패권국가의 탄생에 또 어떤 역할을 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kwkim@fnnews.com 김관웅 부동산전문기자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