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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한유총 빠진 유치원 대책, 실효성 있을까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10.25 16:47

수정 2018.10.25 16:47

당정, 여론에 밀려 급조.. 시장 의견 수렴에 실패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25일 사립유치원 비리 근절 대책을 내놨다. 엄마들이 선호하는 국공립유치원을 더 많이 짓고, 현재 국공립이 쓰는 회계시스템 에듀파인을 사립유치원에도 적용한다는 내용이다. 유치원 설립자·원장의 자격을 더 깐깐하게 바꾸고, 누리과정 지원금을 보조금으로 바꿔 허투루 쓰면 처벌을 강화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전체적으로 사립유치원의 공공성을 강조했다.

일이 이렇게 된 데는 사립유치원 잘못이 크다. 현재 3~5세 유치원생 가운데 75%가 사립에 다닌다.
국공립은 25%밖에 안 된다. 최근 몇년 새 무상보육 확대로 유치원의 역할은 더 커졌다. 사립유치원 설립자·원장이 가입한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는 이같은 독점적 시장 구조를 바탕으로 힘을 남용했다. 지난해 문재인정부가 국공립을 늘리려 하자 "사립유치원 죽이기"라며 반발한 게 대표적이다. 세미나·토론회장을 뒤엎은 것도 한두번이 아니다. 이달초 민주당 박용진 의원이 주최한 토론회도 물리력으로 무산시켰다. 여론이 사립유치원에 등을 돌린 것은 자업자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정부와 민주당이 한유총과 대화에 나설 것을 권고한다. 한유총은 유치원 시장의 강자다. 정부 계획대로 오는 2021년까지 국공립 취원율이 40%로 높아져도 나머지 60%는 사립을 다녀야 한다. 그러나 당정은 이번 대책을 세우면서 한유총과 단 한차례도 대화하지 않았다. 이래선 혼탁한 유치원 시장을 정상화하기 어렵다.

교육부가 대책을 내놓는 것과 그 대책이 시장에 안착하는 것은 또다른 문제다. 국공립 취원율 40% 달성은 말처럼 쉽지 않다. 국공립 취원율은 서울 등 대도시일수록 낮다. 서울에 유치원을 지으려면 땅도 부족하고 돈도 많이 든다. 정부가 40% 목표연도를 2021년으로 1년 앞당긴 것은 과욕이다.

사립유치원이 에듀파인 회계시스템을 순순히 받아들일지도 미지수다. 앞서 한유총은 비리를 탓하기 전에 "먼저 몸에 맞는 옷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했다. 에듀파인은 한유총이 요구하는 '옷'이 분명 아니다. 사립은 사유재산에 기초한 자율성과 학교라는 공공성을 동시에 갖는다. 이 둘은 끊임없이 충돌한다. 노무현정부 때 벌어진 사학법 파동이 좋은 예다. 이번에도 두 가치가 부닥치면서 파열음을 내고 있다.

당정이 추구하는 방향은 옳다. 시설 좋은 국공립 유치원을 더 짓고, 세금이 들어간 유치원 회계는 바로잡아야 한다. 다만 한유총을 적으로 삼으면 시장에서 삐걱대는 소리가 날 수밖에 없다.
이미 일부 지역에선 유치원 접겠다는 소리가 들린다. 엄마들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현실이 이렇다면 당정이 한유총을 만나지 못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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