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장 칼럼]

냉면 도발, 묵과할 일 아니다

10월의 끝자락에 국내 경제인들과 관련한 두 가지 이슈가 눈길을 끌었다. 우선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활발한 글로벌 경영 행보다. 이 부회장은 이달에만 20여일간의 유럽·북미 출장에서 돌아오자마자 베트남으로 날아갔다. 성장 정체에 빠진 휴대폰 사업의 재도약 때문이다. 베트남은 삼성 스마트폰의 해외 최대 생산기지다. 이 부회장은 베트남 도착 직후 응우옌 쑤언 푹 총리와 한 시간을 단독 회동할 만큼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삼성은 베트남 전체 수출의 20%를 담당하고 있다. 베트남 경제에 미치는 절대적인 영향력이 예우에 묻어났다. 이 부회장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도 수차례 만날 정도로 국제사회에서는 국빈급 인사다.

그런데, 이 부회장이 베트남 출장길에 오르기 전날 굴욕적인 사실이 알려졌다. 북한의 대남통일전선 사업을 담당하는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장이 지난 3차 남북정상회담차 방북한 우리 기업인들에게 망언을 퍼부은 것이다. '지금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느냐'고. 야당 의원의 폭로에 설마했다. 그러나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며 이를 인정했다. 조 장관조차도 "그거는 짚고 넘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저 흘려보낼 농담이 아님을 인식한 것이다. 설사, 남북경협에 대한 조급함의 발현이었던들 이런 결례가 어디 있나. 4대 그룹 총수의 방북은 북한도 인정했듯이 '그들이 요청해서' 이뤄진 것이다. 그런데 자신들이 초청한 손님들을 앉혀놓고 하대하는 듯한 발언을 어물쩍 넘겨야 한단 말인가.

게다가 리선권이 동석한 테이블에는 한참 연배의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장도 있었다. 손 회장은 올해 여든이다. 리선권은 방북 총수들에게 대북 투자를 사정했어도 모자랄 입장이었다.

리선권과 동석한 총수들이 이끄는 4대 그룹의 지난해 매출 규모만 773조원에 이른다. 지난해 북한 국내총생산(GDP)의 20배가 넘는 수치다. 리선권의 태도는 안하무인을 넘어 후안무치다. 그저 '일없습네다(괜찮습니다)'처럼 북한식 화법으로 이해하고 넘어가야 하는 것인가. 분명한 것은 방북 기업인들은 우리 정부의 요청으로 어려운 동행길에 나섰다는 점이다. 미국과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여전한 상황에서 말이다. 만약 방북 총수들이 북한에 구체적인 투자를 약속했다면 곧바로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이라는 덫에 빠진다.
이란과 거래하는 제3국도 제재를 가해 결국 해외 기업들이 이란에서 모두 철수한 전례를 잊었는가. 핵을 포기하고 경제발전을 통해 정상국가로서 인정받고 싶다면 그에 맞는 품격은 필수다. 그런 면에서 리선권은 함량미달이다. 북한이 남북경협의 진정성이 있다면 우리 경제인들을 격에 맞게 대접하는 것부터 배워야 한다.

cgapc@fnnews.com 최갑천 산업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