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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스트리트] 고시원의 비극

구본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11.12 17:13

수정 2018.11.12 17:13

"처마 밑에 모여 시험에 대해 떠도는 소문들을/담배 한 갑으로 나누어 피웠다/길바닥에는 단풍보다 화려한 전단지들이 뒹굴었다/…/웃음은 모두 증발해버린/비린내 대신 짠내만 가득한 동네" 조영석 시인이 그려낸 '노량진 고시촌'의 풍속도다.

그러나 요즘 고시촌은 청운의 꿈을 좇는 고시생들이 외려 비주류다. 고시원이 더는 사법시험이나 행정·기술 고시 등을 노리는 청년들만의 공간이 아니란 얘기다. 붕어빵에 정작 붕어는 없다는 말처럼…. 고시생들이 떠난 빈자리는 알바 일자리를 전전하는 청년층이나 장년층 일용직 근로자들이 채우고 있다. 고시원이 내 집 마련의 꿈이 아득한 주거취약층의 기약 없는 임시거주지가 되고 있는 셈이다.

이정하 시인이 그랬다.
'너는 눈부시지만, 나는 눈물겹다.'고. 서울 도심의 인텔리전트 빌딩과 고가 아파트 사이 열악한 고시원의 실태가 극명하게 드러났다. 7명이 희생된, 지난 9일 서울 종로 관수동 화재참사에서 비친 고시원의 속살은 남루하다 못해 처참했다. 고된 하루 일을 마친 이들이 작은 몸 하나 겨우 누일 3.3㎡(1평) 남짓 공간이라서가 아니다. 화재 시 빠져나갈 비상구도, 간이 스프링클러도 없었다니 말이다. 이처럼 안전 사각지대에 놓인 고시원이 어디 한두 군데일까. 정부의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국에 걸쳐 1만1000여개에 이르는 고시원엔 15만2000명이 거주하고 있다. 이 중 서울 소재 1080곳엔 스프링클러가 없거나, 있어도 '먹통'이라고 한다.

더욱 심각한 건 국일고시원 이재민 일부는 벌써 스프링클러도 없는 다른 고시원으로 이주했다는 사실이다. 방값을 감당할 대안이 없어서일 게다. 그러는 사이 정부는 이들을 대상으로 "공공임대아파트 입주를 검토하겠다"고 약속했다.
서울시도 15일부터 고시원 전수 안전점검에 들어가겠다는 대책을 내놓았다. 이처럼 뒷북이라도 치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 해야 할까. 중앙정부도, 지자체도 목소리 큰 대기업 노조나 공공부문 노조에만 신경 쓰느라 진짜 사회적 약자층엔 무관심하다는 느낌도 든다.
선거 때 '표'가 되지 않는 탓일까. 11일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치러진 희생자 장례식장에서 "안전한 나라"를 구두선처럼 읊조리던 '높은 분'들의 얼굴은 눈에 띄지 않았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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