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전국

[특별기고] 이젠 주민도 쉽게 조례안 만들어

김성원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11.12 19:20

수정 2018.11.12 19:20

[특별기고] 이젠 주민도 쉽게 조례안 만들어

2016년 11월, 미국 전역이 대선으로 들썩였지만 애당초 민주당의 우세가 확정적이었던 캘리포니아에서는 다른 이슈들이 주목을 받았다. 바로 대선과 함께 찬반투표가 치러진 17건의 주민발안 법안이다. 여기에는 '상점의 1회용 비닐봉지 사용금지' 같은 실생활 속 규제부터 '마리화나 합법화', '공립학교 이중언어 교육 허용' 같은 무거운 주제까지 다양한 안건들이 포함되었다.

이처럼 주민생활과 밀접한 사안에 대해 주민들이 발의하고 결정하는 것은 미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스위스 또한 평균 3개월에 한 번씩 주민발안 안건에 대해 투표를 할 정도로 주민참여가 활성화되어있다. 이 정도면 대의제와 직접민주주의가 결합된 하이브리드 민주주의(hybrid democracy)라고 표현할 만하다.


주민발안은 이렇게 민주주의가 한 단계 더 발전하는데 필요한 첫 걸음이라 할 수 있다. 민주주의가 공동체의 규칙 제정에 구성원들이 참여하여 자기지배(self-rule)를 실현하는 제도라 한다면, 주민발안은 기존에 의회중심의 대의민주주의 체제에서 소외되었던 주민의 의사가 안건으로 상정되고 법이나 조례로 만들어질 기회를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1999년 주민 조례 제정.개.폐 청구제도를 도입하여 이러한 흐름에 동참하였다. 그런데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 주민투표, 주민소환과 달리 주민발안만 조례 제정.개.폐 '청구'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행정안전부는 주민조례 '청구'를 실질적인 '주민발안'으로 개편하는 법률 제.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우선, 기존에 지방자치법의 2개 조항으로 있던 것을 '주민조례발안에 관한 법률'로 분리하여 별도로 제정한다. 주민조례안 제출도 단체장을 거치지 않고 주민이 직접 지방의회에 한다. 조례안 작성 시 온.오프라인 지원을 통해 법률지식이 부족한 주민도 쉽게 조례안을 만들 수 있도록 하였다. 주민조례안이 방치되지 않도록 지방의회가 1년 이내에 심의.의결하는 것도 의무화하였다.

주민발안의 문턱도 대폭 낮추었다. 인구규모별로 서명 기준을 차등화하여 대도시의 경우 최대 절반 이상 기준을 완화하였다. 세계적인 추세를 고려해 주민발안 연령도 18세로 낮춰 청년층의 지역참여도 촉진할 계획이다.

스위스의 자치단체 간 비교연구 결과에 따르면 직접민주주의가 활발한 지역은 다른 지역보다 시위 같은 비제도적 사회운동의 비율은 절반 이하인 반면, 주민의 행복도는 높았다고 한다.


자신의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공동체의 일에 직접 참여하는 효능감이 삶의 만족으로 이어지고 사회적 갈등도 완화시켜준 것이다.

좋은 정치체제는 광장에 촛불을 들고 나올 필요가 없는 체제이다.
주민발안을 필두로 한 주민참여의 확대가 좋은 지역정치를 만드는 첫 걸음이 될 것이라 기대한다.

김현기 행정안전부 지방자치분권실장

win5858@fnnews.com 김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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