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나루]

네덜란드병 치유한 빔 콕 리더십



결국 민주노총의 참여 없이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출범할 예정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일자리 위기를 벗어나는 가장 바람직한 길은 노사정을 비롯한 경제주체들이 힘을 합치고 고통을 분담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노동운동의 역량이 강화되고, 사회적 지지가 확산되는 것이다. 민주노총은 언제까지 이 길을 저버릴 것인가.

지난달 타계한 빔 콕 전 네덜란드 총리는 노사정 타협과 협력을 통해 위기 극복의 길을 열었다. 그는 노동운동 지도자 출신으로 총리를 지냈으며, 네덜란드병을 치유하고 네덜란드의 기적을 이룬 주역이었다. 무엇보다 일자리 위기를 해결했다.

네덜란드는 1970년대에 이른바 네덜란드병(Dutch Disease)을 앓았다. 1959년 북해 가스전 발견으로 생긴 막대한 벼락수입으로 네덜란드는 복지를 확대하는 등 잔치를 벌였다. 그러나 그것은 일장춘몽이었다. 천연가스 수출 증대로 덴마크화의 통화 가치가 상승했고, 이로 인해 천연가스를 제외한 수출은 급감하고 물가는 급등했다. 노동자들은 임금인상을 요구했고, 환율 때문에 경쟁력이 떨어진 기업은 이를 수용할 수 없었다. 노사분규가 끊이지 않았다. 성장이 정체되고, 실업률은 치솟았다.

성장과 일자리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네덜란드 정부는 입법을 통해 임금동결을 추진하기도 했다. 그러나 1982년 당시 네덜란드 노총위원장 빔 콕은 다른 길을 택했다. 대타협을 통한 위기 극복의 길이었다. 그는 바세나르에 있는 경영자연합회 회장 집에서 네덜란드병을 치유하기 위한 노사의 역할 분담에 합의했다.

노동조합은 임금인상을 자제하고, 기업은 근로시간 단축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었다. 정부는 노사 대타협을 지원하기 위해 세금을 인하하고, 재정 지원을 확대했다. 이것이 대타협을 통한 국가위기 극복의 모범사례인 바세나르 협약이다.

바세나르 협약은 네덜란드 경제와 사회에 대전환점을 만들었다. 성장률이 올라갔고, 실업률이 하락했으며 노사협력은 증진됐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1990년대에 들어와 경제가 다시 어려워지자 1993년 '새로운 노선(New Course) 협약', 1996년 '유연안정성 협약'을 체결했다. 일련의 협약 체결을 통해 노사정이 힘을 합친 결과 네덜란드는 선진국 가운데 경제가 가장 안정되고, 고용률이 가장 높은 나라로 탈바꿈했다.

노사가 합의한 일련의 협약은 임금인상 자제, 해고 통지기간 단축 및 절차 간소화, 실업보험 급여 삭감 및 지급기간 단축 등 노동계로서는 수용하기 어려운 내용도 담고 있었다.
이 때문에 빔 콕은 바세나르 협약 당시에 노동계로부터 배신자라는 비난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이 길이 아니고는 네덜란드병을 치유하고, 일자리를 늘릴 수 없다고 확신했다. 그리하여 총리(1994~2002 재임)가 된 후에도 이 기조를 지켜나갔다.

성장과 일자리 위기가 깊어지고 있는 지금 우리는 빔 콕과 같은 리더십을 기대할 수는 없는가. 국가가 어려울 때는 노동운동 지도자가 위기 극복을 위해 양보하고 타협하는 담대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는 없는 것일까. 이렇게 하면 네덜란드뿐만 아니라 유럽의 여러 국가 경험에서 보듯이 노동운동에 대한 사회적 지지가 확대되고, 노동운동 지도자가 국가경영을 책임지는 시대도 다가오지 않을까.

이원덕 전 청와대 사회정책수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