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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에서] 위기의 전기차

김두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11.16 16:53

수정 2018.11.23 15:59

[여의도에서] 위기의 전기차


한 중견 기업인한테서 편지 몇 통이 왔다. 편지는 장문이었고, 내용도 꽤 거칠었다. 편지의 주된 내용은 '위기의 한국'이다. 어떤 편지 속에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해결에 힘쓰고 있는 '기울어진 운동장론'에 대한 그 나름의 견해도 곁들였다. 또 다른 편지에는 한국의 자동차산업은 미국·유럽에는 밀리고, 중국·인도에는 바짝 추격 당해 도시바나 노키아 꼴 당하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이 묻어났다. 편지를 쓴 당사자는 신재생에너지 회사를 운영해 큰돈을 번 뒤 전기차사업에 뛰어든, 이 분야 신출내기 사업가다.


특히 '공정한 기회와 정의로운 결과가 보장되는 나라, 국민 단 한명도 차별받지 않는 나라, 그것이 함께 잘사는 포용국가'라는 최근 대통령 국회 시정연설을 편지에서 직접 인용하며 우리나라는 아직 '운동장이 심하게 기울어져 있다'고 썼다.

화석연료 자동차산업을 놓고 보면 국내 시장은 운동장이 한참 기울었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전기차 분야는 초기 분야라 그런지 아직 평평하다. 다만 국내시장은 전기차 공급자와는 달리 수요자 입장에서는 기울어져 있는 게 문제다. 오죽하면 수요자들은 고비용을 치러가면서 자국 산업 육성만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고 하소연한다. 특히 뒤떨어진 기술력과 높게 책정된 가격을 원망하고 있다. 어떤 구매자는 "우리가 왜 검증되지도 않은 국산 전기차를 높은 가격을 지불하면서까지 구매해야 하느냐"고 볼멘소리를 했다. 이 같은 사례는 지난여름에 있었던 서울시 전기시내버스 공급자 선정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

전기시내버스 핵심 구매자인 서울시내버스조합은 전기차 공급자 선정에서 국내 E사와 H사를 각각 선정한 뒤 중국의 H사까지 포함시켰다. 특히 중국 H사는 공급량의 30%를 공급하기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중국 H사는 전기배터리 성능 등 더 나은 기술력에 가격경쟁력까지 앞선 점을 인정받았다. 이 업체의 전기차 가격은 국산보다 대당 몇 천만원 저렴했다. 서울시내버스 운수업체가 이 회사를 선택하는 건 당연했다. 이 때문에 정부와 서울시의 시름은 깊어졌다. 대당 4억원을 호가하는 국산차에 정부와 서울시는 3억여원을 보조해야 하기 때문이다. 서울시내버스조합은 현재 7400여대의 화석연료 시내버스를 운영하고 있다. 이 가운데 앞으로 2025년까지 3000대를 전기버스로 교체해야 한다. 이런 공급방식이라면 최소 1000여대는 중국시장에 잠식당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이들 두고 공급자 선정에서 탈락한 국내 업체는 중국 업체를 선정한 서울시내버스조합에 반발하면서 문제가 커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런 현실을 보면서 조선산업이 생각났다. 이 분야 세계 시장은 1990년대 말까지 일본이 독식했으나 국내 업계에 추월당했다. 그러나 국내 조선업 호황은 불과 10년도 못돼 중국에 또다시 추월당했다. 도산, 실직 등은 국내 조선업의 현주소다. 이 산업에 정부는 수조원을 퍼부었지만 수렁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국내 전기차산업도 남의 얘기가 아니다.
미세먼지와 지구온난화 문제로 화석연료 시장은 이제 퇴출될 운명에 처했다. 연말까지 서울은 29대의 국산 및 중국 전기시내버스가 시범 운행된다.
한국 전기차는 출발부터 위기에 봉착했다.

dikim@fnnews.com 김두일 정책사회부 부장 dikim@fnnews.com 김두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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