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사시·변시 패스하고도… 변호사보다 차라리 공무원 할래

이진석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11.18 17:32

수정 2018.11.18 17:35

법조계 경쟁심화 신풍속도..10년새 변호사 1만5천명↑
몸값 하락 과중한 업무 부담
법원행시 출신 200명 중 10% 변호사 자격증 보유
언젠가 변호사 개업에 유리..사무관 근무 선택하기도
사시·변시 패스하고도… 변호사보다 차라리 공무원 할래

경쟁심화로 법률시장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법조인 자격을 얻고서도 공무원을 선택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법원사무관으로 근무하면서 사법시험 공부를 병행해 변호사가 된 일화가 흔하게 들려오던 시절을 생각하면 '상전벽해'의 변화다.

18일 대법원에 따르면 현재 법원공무원 가운데 사법시험(17명)과 변호사시험(3명) 합격자 출신은 5급 사무관 17명, 4급 서기관 3명 등 총 20명이다.

전국 법원에서 4~5급 공무원 수는 지난해 말 기준 1545명이지만 한해 10명 남짓 선발하는 법원행정고등고시 출신 인력은 200명 이내에 불과하다. 사시·변시에 합격했던 공무원들은 모두 법원행시출신들로, 즉 이들 10명 중 1명은 변호사자격증을 따고서도 법조인이 아닌 공직의 길에 들어선 셈이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사시 합격자가 사무관으로 활동하는 사례는 찾기 드물었다.
사시와 행시에 모두 붙더라도 대부분 법조인이 되거나 오히려 사무관으로 근무하다가 뒤늦게 사시 합격 후 법조인이 되는 게 일반적이었다.

■'공직행' 어려워진 법률시장에 대한 부담감?

그러나 최근에는 사시나 변시를 합격하고서도 다시 법원행시 준비를 통해 사무관이 되는 경우도 나온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2000년대 초에 법원사무관으로 근무하며 틈틈히 사시 공부를 해서 변호사가 됐다. 사시 합격 후 행정고시를 다시 치러 사무관이 되는 사례는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사시와 법원행시를 동시에 붙은 한 합격자는 사법연수원에서 2년 과정의 실무교육까지 수료한 후 법원사무관을 선택하기도 했다.

고소득 전문직으로 평가받는 변호사들이 상대적 박봉인 법원공무원으로 눈을 돌린 건 포화상태에 빠진 법률시장에 대한 부담감 때문으로 풀이된다.

법무부가 발표한 등록 변호사는 지난 9월말 기준 2만5306명이다. 10년 전과 비교했을 때 1만5000명 이상 급증했다. 여기에 로스쿨 변호사들이 대거 배출되면서 경쟁이 치열해진 탓에 초임 변호사들의 몸값은 갈수록 떨어졌고, 취업난을 걱정해야 할 처지까지 놓였다. 또 과중한 업무량에 치이는 변호사보다 공무원의 '안정된 삶이 낫다'는 시대적 상황도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로스쿨 출신의 한 초임변호사는 "변호사는 급격하게 늘어가지만 이를 수용할 정도의 법조시장은 형성돼 있지 않다. 변호사들 월급도 일부 대형로펌을 제외하고는 많이 떨어졌다"며 "취업을 하더라도 평생직장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워라밸을 중시하는 경향도 커지다 보니 젊은 변호사들 중에선 공무원을 꿈꾸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법원사무관 경력, 훗날 변호사 활동에 큰 자산

법원 내에서 맡은 업무가 훗날 변호사 활동 시에 유용한 경험이 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인 요소다. 법원사무관들은 재판부 업무 외에도 부동산등기·상업등기, 가족관계등록사무, 민사집행, 개인회생, 공탁 등 비송영역에서 다양한 업무를 접하게 된다. 사무관으로 5년 이상 근무할 시에는 기존에 법관이 담당했던 소송비용액확정, 독촉, 공시최고, 경매 등의 업무를 수행하는 사법보좌관으로도 선발될 수 있다.
퇴직 후 집행관으로 임명될 경우에는 변호사 못지 않은 고소득도 올릴 수 있다.

사시 합격자 출신의 한 법원사무관은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하고서도 막상 사건을 많이 해보는 것 이외에는 변호사로서 전문성 확보가 힘들다"며 "법원사무관들은 소송 전 단계인 비송업무를 맡으면서 실무경험을 쌓을 수 있어 언젠가 변호사 활동을 할 때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 변호사는 "판사나 검사, 대형로펌 변호사가 되지 않는다면 개업보다 법원사무관으로 근무하면서 경력을 쌓는 편이 나을 수 있다"며 "최근 재야 법조계가 힘들다 보니 변호사가 되는 것보다 법원사무관이 되는 게 더 어렵다"고 전했다.

fnljs@fnnews.com 이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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