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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스트리트] 입법고시

정훈식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11.21 17:12

수정 2018.11.21 17:12

행정고시와 입법고시는 각각 정부와 국회의 공무원을 뽑는 시험이다. 고시를 통과하면 중앙부처나 국회 초급 간부인 5급(사무관)으로 부임해 직장의 안정성은 물론이고 신분(명예)을 보장받는다. 판검사가 되는 사법고시는 지난해를 끝으로 54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노무현정부가 폐지를 거론한 후 10여년간 논란을 거듭하다 문재인정부가 공약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고시는 대표적 공통점이 있다. 학력, 경력, 연령 등 응시자격에 제한을 거의 안 둔다는 점이다.
중졸 출신도, 고교 중퇴자도 시험을 쳐서 합격하면 대졸 출신, 석·박사 등과 대등한 처우를 받으며 초급간부로 시작해 고위공무원이나 장차관까지도 오를 수 있다. 그래서 고시를 계층사다리라고 부른다. 더 쉽게 말하면 흙수저들의 희망사다리인 셈이다. 고시 문턱을 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렵다. 고시낭인이라는 말도 그래서 나왔다.

입법고시는 최종 합격 후 국회사무처 등 국회 조직이나 각 상임위원회, 특별위원회에 배치돼 보직에 따라 입법과 행정업무 등 각종 국회 활동을 지원한다. 입법고시는 선발인원이 매년 15명 안팎으로 행정고시(600명)에 비해 훨씬 적다. 상대적으로 독립성이 더 보장되는 데다 업무환경이 좋고 승진 기회까지 많다는 인식 때문에 인기가 높다. 올해 시험 경쟁률이 275대 1로 행정고시(40대 1)의 6배가 넘었다. 근무지가 서울이라는 점도 작용했다.

입법고시가 40여년 만에 폐지 기로에 섰다. 국회의장 직속 국회혁신자문위원회는 최근 문희상 의장에게 입법고시 폐지안을 내고 공론화에 나설 것을 권고했다고 한다. 뽑는 방식이 폐쇄적이어서 다양성과 전문성을 요구하는 현실과 안 맞는다는 게 이유다. 입법고시 출신자들은 발끈한다. 공개채용을 거쳤는데 폐쇄적이라고 하는 건 말이 안된다는 것이다. 외부인력이 들어오면 되레 전문성이 더 떨어질 것이라고도 반박한다.
일각에선 입법고시가 없어지면 정치권의 '낙하산' 늘리기로 변질돼 입법부 공무원이 가져야 할 정치적 중립성이 훼손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양쪽 주장에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사법고시에 이어 계층사다리 하나가 또 사라질지 자못 궁금하다.

poongnue@fnnews.com 정훈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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