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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마크롱의 문화재 반환 선언, 진짜 의도는

서혜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11.23 17:27

수정 2018.11.23 17:27

[월드리포트]마크롱의 문화재 반환 선언, 진짜 의도는


이번주 프랑스 '대통령 보고서'에 유럽 박물관들이 크게 술렁였다. 제국주의 시대 아프리카 식민지에서 약탈한 문화재를 모두 영구 반환하도록 프랑스 관련법을 개정하자는 내용이 담겨 있어 소장 중인 약탈 문화재에 대한 환수 압박이 커질까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문화재반환 특별고문인 미술사학자 베네딕트 사부아와 세네갈 출신 경제학자 펠륀 사르가 작성해 23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에게 제출한 이 보고서는 프랑스에 있는 약 9만점의 약탈 아프리카 문화재 가운데 상대국의 동의 없이 불법적으로 들여온 것은 상대국의 요청이 있을 경우 전부 영구 반환할 수 있도록 관련법을 개정하라고 조언하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아프리카 문화유산의 90~95%가 프랑스, 독일, 영국 등 아프리카가 아닌 지역에 소장돼 있다. 프랑스만 해도 최소 9만점의 아프리카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 중 7만개가 프랑스 파리 소재 '케 블랑리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보고서는 구체적인 반환절차도 제시했다.
향후 수년간 3단계에 걸쳐 약탈 문화재 반환 절차를 진행하도록 한 것이다.

먼저 아프리카 국가 또는 아프리카 사회가 오랫동안 요구해온 매우 상징적인 문화재들을 공식 반환해 이 문제에 대한 프랑스 정부의 진정성을 보여주도록 했다. 두번째 단계로 내년 봄부터 2022년 11월까지 아프리카 각국 정부와 반환 문화재 목록 작성, 디지털 파일 공유, 집중 협의 등을 하게 하고, 마지막 단계로 아프리카 국가들이 프랑스 측에 문화재 반환 청구를 제출하도록 했다. 보고서는 아프리카 국가가 돌려받은 문화재를 완벽하게 보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프랑스 정부가 향후 5년간 정보수집과 연구, 과학 교류 및 훈련 과정 등을 함께 진행할 것을 제언했다.

이번 보고서는 올해 초 마크롱 대통령이 사부아와 사르, 두 특별고문에게 관련 연구를 요청하면서 시작됐다.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서아프리카 순방기간 처음으로 아프리카 문화재 반환을 공개 약속했다. 과거 프랑스 식민지였던 부르키나파소의 와가두구대학 특강에서 "아프리카 문화재는 파리에서도 가치가 있어야 하지만 다카르(세네갈), 라고스(나이지리아), 코토누(베냉)에서도 그래야 한다"면서 "향후 5년간 아프리카 문화재를 일정 기간 또는 영구 반환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길 바란다"고 밝힌 것이다. 마크롱의 발언에 수백명의 대학생들은 환호와 박수갈채를 보냈다.

마크롱 대통령이 역대 프랑스 정부와 달리 아프리카 문화재 반환에 적극 나서고 있는 데는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다. 국내에선 자신을 식민시대와 단절된 새로운 정치세대로 부각시키면서 대외적으로는 중국의 입김이 거세지고 있는 아프리카에 대해 연성권력을 강화하려는 것이다. 프랑스는 서아프리카의 옛 식민지국들에서 중국이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영향력을 넓혀가자 이 지역에서 세력을 유지하기 위한 방안을 고민해왔다.

아프리카 전문가인 마리에 에마뉘엘 포메롤 파리1대학 교수는 "마크롱의 문화재 반환 발언은 (프랑스의) 폭력적인 과거, 아프리카 대륙과의 폭력적인 관계를 인정하는 맥락"이라며 "마크롱은 자신을 식민시대와 연관이 없는 새로운 정치세대로 이미지화하겠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마크롱의 과감한 계획이 실현되기까지는 넘어야 할 난관이 적지 않다.
프랑스 의회에서 법률 개정안이 통과돼야 하지만 반대여론이 만만치 않다. 여당이 다수당을 차지하고 있지만 마크롱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25%로 떨어진 데다 연료세 인상 계획에 대한 전국적인 반대시위가 벌어지고 있어 정치적 부담도 크다.
일부 전문가들은 문화재 반환 이슈를 정치화해서는 안되며 해당 박물관과 전문가, 학계 논의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sjmary@fnnews.com 서혜진 국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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