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논단]

보헤미안 랩소디와 대한민국


요즈음 전설적인 록그룹 퀸의 리드 싱어 프레디 머큐리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가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1991년 그의 사망 이후 태어난 젊은 층에까지 폭넓게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그 이유는 퀸의 음악에 대한 재조명을 넘어 그가 겪어낸 40여년 전 시간의 경험들이 2018년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새삼 공감을 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퀸이 활동한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로 시간을 돌려보면 그들은 우리에게 아마도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선진 문화예술인들로 보였을 것이다. 산업화로 배고픔을 이겨야만 하는 시절에 디자인, 물리학, 전자공학 등을 전공한 엘리트 젊은 친구들의 도전이 음악적 성공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낯설고 놀라울 뿐이었다.

그러나 산업화에 이어 정보화와 민주화까지 이룬 오늘날 우리들에게 그의 이야기는 가슴에 직접 와닿는다. 특히 세상의 압력과 기대를 무릅쓰고 자신의 꿈을 향해 미래를 개척해야 하는 젊은이들의 자유와 도전을 응원하고 위로한다. 자신의 음악을 무명으로부터 세상에 알리는 데까지 보여준 그의 당당한 태도는 바로 인생 성공의 제1 법칙이었기 때문에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토론토대 심리학과 교수인 조던 피터슨은 "성공하려면 아무리 어려운 처지에서도 허리를 세우고 가슴을 펴야 한다"고 주장한다. 뇌화학에서는 그래야 세로토닌 수치가 높아지고, 옥토파민 수치가 낮아짐으로써 자신감이 넘치고 도전을 받아도 움츠러들지 않는다고 한다. 실제로 프레디 머큐리는 긴장감이 극도에 달하는 무대 입장 때부터 꼿꼿한 자세로 제자리 뛰기를 하고 등장한다. 그리고 항상 어깨를 펴고 유난히 똑바로 선 자세를 유지하면서 노래를 부른다. 마치 세로토닌을 신경회로에 흘러내리도록 함으로써 두려움을 날려보내고 그 자리를 자신감으로 채우려는 듯이.

"어깨를 펴고 똑바로 선다"는 것은 "자신에게 닥치는 불확실함을 견뎌냄으로써 궁극적으로 더 의미 있고, 더 생산적이고, 더 좋은 질서를 만들겠다"는 의미라고 한다. 하지만 당시 영국 사회나 지금 한국 사회나 기존 규범과 질서는 청춘들의 자신감과 도전을 과소평가하거나 위축시키기 일쑤다. 자식들의 날개를 꺾는 가정교육, 대기업과 공공기관 같은 안전한 삶만 평가하는 사회 분위기, 새로운 혁신분야 진입을 가로막는 규제 등은 사회적으로 세로토민 분비를 막고 옥토파민 수치를 높임으로써 경제주체들의 자아를 갈수록 작아지게 하고 '위험한 세상'으로부터 도피하고자 하는 심리를 키운다.

우리 사회의 욕구체계는 이미 생존과 안전 추구에서 성취와 자아실현의 단계로 넘어왔다. 이에 반해 작동하고 있는 규범과 질서는 과거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부딪히는 좌절과 분노가 적지 않다.
아시아의 비틀스에 비유되는 방탄소년단 그리고 앞에서 그 길을 닦아온 동방신기, 빅뱅, 엑소 등 K팝 그룹들도 이런 좌절과 분노를 딛고 세계적 팬덤을 만들어냈다. 이들을 기리는 영화도 훗날 등장할 것으로 기대해본다. 끝으로 사족 하나. 작은 흠결에도 분노하고 용서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세상을 바꾸는 영웅이 결코 탄생할 수 없다는 점. 동료 배반, 마약, 동성애 등으로 점철된 프레디 머큐리를 용서한 퀸의 용기와 그의 과보다는 공을 높이 평가할 줄 아는 사회의 관용은 성숙한 선진 사회를 만들어가는 데 필수요소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이장우 경북대 교수·성공경제연구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