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차장칼럼] 드라마만큼 극적인 현실

안승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11.26 16:50

수정 2018.11.26 16:50

[차장칼럼] 드라마만큼 극적인 현실

요즘 즐겨 보는 드라마가 하나 생겼다. 잘생기고 예쁜 남녀 주인공이 등장하는데, 으레 그렇듯 서로 야단법석을 떨며 연애를 벌이는 내용이다.

평소 아내가 열심히 드라마를 볼 때마다 짐짓 "나는 저런 거 하나도 재미없던데…"라며 허세를 부려왔던지라 핀잔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아저씨가 뒤늦게 웬 사랑놀음하는 드라마에 푹 빠졌느냐는 것이다. TV 앞에 앉을 때마다 뒤통수가 따끔거리지만 재미있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드라마 속 여주인공은 한달에 일주일간 다른 사람으로 변한다.
아이로, 노인으로 심지어 성별도 마구 뒤바뀐다. 남자 주인공은 사고 후유증으로 사람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 안면인식장애를 앓고 있는데, 희한하게도 여주인공만은 기가 막히게 알아본다.

우리는 나를 포함한 주위의 모든 것들과 함께 조금씩 변하면서 산다. 속도가 느리니 잘 모를 뿐이다. 종종 너무 빠른 속도로 무엇인가 달라질 때도 있는데 우리는 그런 현상을 '급변'이라고 부른다. 어제까지만 해도 오르던 주식이 갑자기 하한가를 맞을 수도 있고, 사랑한다며 잘 자라고 인사하던 여자친구가 오늘 갑자기 이별을 통보할 수도 있다. 그리고 아무 문제없던 회사가 정권이 바뀌자 갑자기 적폐기업으로 낙인 찍히는 일도 생긴다.

금융당국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국내에 상장시켰던 바이오기업이 정권이 바뀐 뒤 갑자기 분식회계라는 꼬리표를 달았다. 전전 정권에서 성공적 해외 광산투자로 불리던 사업이 이번 정권에서는 갑자기 부실 광산투자로 둔갑하는 일도 벌어졌다. 드라마 속 여주인공 못지않은 극적 변신이다.

얼마 전 한 외국기업 경영진을 만날 일이 있었다. 그들은 한국의 독특한 기업환경을 언급했는데 정권이 바뀔 때마다 민간 은행장과 철강사 사장이 바뀌는 점을 이해하기 어려워했다. 한국측 파트너와 합작한 사업은 수년째 순항 중인데, 새 정부가 들어서자 실패한 사업이라는 비난이 쏟아지는 것에 대해서도 당혹스러워했다. 사실 여러 산업이 그렇듯 몇 년 안에 승부를 보기 어려운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런 한국적 리스크 속에서 10년, 20년을 내다보기는 쉽지 않다.
방법이 하나 있기는 하다. 최소 3~4년 안에 결과를 낼 수 있는 사업에만 집중하면 된다.
정권이 바뀌기 전에 모든 것을 마무리 짓기만 한다면 다음 정권에서 비리, 부실, 방만, 분식회계 중 몇 가지는 피해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ahnman@fnnews.com 안승현 산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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