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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중로] 무어와 트럼프

최진숙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11.26 17:23

수정 2018.11.26 23:10

[윤중로] 무어와 트럼프

이번 주 세계는 향후 글로벌 경제 운명을 좌우하게 될 빅 이벤트와 마주한다. 전 세계 산업·경제 그물망을 송두리째 뒤흔들며 양보 없는 무역대전을 펼치고 있는 두 주인공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회동. 오는 30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개막하는 주요20개국(G20) 회담기간 둘은 전격 만남을 가질 예정이다.

둘만의 시간은 이게 얼마 만인가. 자금성을 통째로 비워 그들 부부만의 오붓한 시간을 보낸 게 딱 1년 전이다. 당시만 해도 그 깊은 속을 세상 누구에게도 보여준 적 없는 노련한 시황제가 계산 빠른 부동산 재벌 출신 미국 대통령을 깔끔하게 매수했다는 시각이 우세했지만, 자금성 약발은 생각보다 오래간 것 같진 않다.

트럼프는 다 진 것 같은 싸움판에서도 결코 지지 않는 신통한 힘을 지녔으니, 이걸 마법의 '트럼피즘'이라고 해야 하나. 저서 '공포(Fear)'를 통해 트럼프 백악관의 밑바닥을 파헤친 워터게이터 특종 기자 밥 우드워드, 뉴욕타임스에 익명의 기고를 실은 트럼프 행정부 내부고발자, 이런 저격수들이 공통으로 조준한 것은 대통령의 도덕성이다. 한 나라의 최고권력에게 치명적 결격사유가 될 거짓과 분열 책동의 혐의를 문제 삼았지만 중간선거 결과를 보라. 트럼프는 지지 않았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나란히 했던 그 비굴한 기자회견 이후 빗발친 야유와 항의, 브렛 캐버노 대법관의 후보검증 기간 쏟아진 성추문 스캔들 후 불붙었던 여성 유권자들의 분노. 이런 비판들이 트럼프 상태를 조금이라도 바꿔놓았다고 생각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제 언론인 카슈끄지 암살 배후로 지목된 사우디아라비아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를 감싸고 도는 극적 행보로 역풍을 자초하고 있지만, 여기서도 크게 밀릴 것 같지 않다.

미국 대통령의 비호 속에 왕세자는 G20 회동에서 외교가에 복귀한다. 서방 지도자 중 누가 이 사건에 당당히 정의를 외칠 것이라고 보나.

최근 개봉한 마이클 무어 감독의 다큐 '화씨 11/9:트럼프의 시대'는 트럼프 출현의 필연성, 트럼프 시대가 더 강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를 되짚는다.

이 다큐를 보고 정작 섬뜩할 쪽은 트럼프보다 오바마 진영일 것이다.
누가 봐도 트럼프는 인류를 혼돈의 경지로 이끄는 폭풍 같은 존재이지만 지금 미국 정치권은 이 소용돌이에 맞설 용기, 열정, 정의가 있냐고 무어는 일격을 가한다. 그는 독일 나치즘과 트럼피즘의 본성을 같은 선상에 두면서도, 그 대안이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나 현 민주당 지도부가 될 수 없는 이유를 이런 맥락에서 따지고 있다.


어느새 주류를 파고든 트럼피즘, 극우, 포퓰리즘의 신흥 권력에 맞설 정치대안의 부재, 이것이 미국에만 해당되는 것일까. 거스를 수 없는 불확실성의 시대, 정치가 왜 바로 서야 하는지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jins@fnnews.com 최진숙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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