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나루]

김장으로 情 나누기


24일 전국적으로 내린 눈을 보며 '겨울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겨울이 오면 집집마다 월동 준비로 분주한데 우리 민족이 예로부터 가장 큰 월동준비의 하나로 행해오던 것이 김장이다. 김장을 담그는 날엔 아이들은 배추를 나르고, 어른들은 항아리를 땅에 묻으며 모두가 손을 보탰다. 그리고 김장하는 날은 마을 잔칫날이기도 해서 이웃이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며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이처럼 우리 민족에게 김장은 겨울을 잘 나기 위한 마을의 큰 행사이자 고유한 문화였다. 짧은 시간에 많은 양의 김치를 담그려면 서로 도와야 했기에 김장은 이웃을 자연스럽게 공동체로 묶어주는 역할을 했다. 또한 넉넉히 김장을 담가 이웃과 나누어 먹으면서 정이 차곡차곡 쌓이기도 했다.

이런 김장문화는 지역과 세대를 초월해 광범위하게 전승돼 왔고, 한국인의 나눔과 공동체문화 제고에 기여했다는 점이 인정돼 2013년에는 '유네스코 세계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됐다.

김치는 한국인의 식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음식이자 5000년간 선조들의 건강을 지켜준 보약이기도 하다. 김치의 주재료인 배추 잎사귀에는 철분, 칼슘, 비타민C가 풍부하고 고갱이에는 비타민A가 많이 함유돼 배추와 20여가지 양념으로 버무린 김치는 겨우내 비타민과 무기질을 공급하는 주된 영양 공급원이었다. 대표적 발효식품인 김치에는 g당 최대 1억마리의 유산균이 함유돼 독감과 장염, 피부염 등 면역질환 예방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이렇게 깊은 역사, 다양한 효능, 문화적 특성까지 보유한 김치가 최근 사람들에게 외면받고 있어 안타깝다. 한 식품기업 조사 결과에 따르면 올해 절반 넘는 주부들이 '김장을 할 계획이 없다(56.0%)'고 답했고, 김장을 하더라도 20포기 이하로 하겠다는 응답이 절반(47.0%)에 달했다고 한다. 세계김치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국민 1인당 연간 소비하는 김치의 양은 36.1㎏으로 10여년 전의 44.6㎏에 비해 20%나 감소했다. 설상가상으로 외식업체 중 절반가량이 수입산 김치를 사용하고, 중국으로부터 김치 수입이 2005년 583억원에서 2017년 1455억원으로 3배 이상 증가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김장철을 앞두고 주재료로 각광받아야 할 가을무 가격이 평년 대비 28%, 양파 가격은 31% 하락해 농업인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김치 소비 감소는 단순히 농업부문의 피해를 넘어 정을 나누는 아름다운 전통이 사라져간다는 점에서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농협은 매년 김장채소 재배농가를 돕고 이웃에 대한 나눔과 배려의 문화를 유지·계승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 나가고 있다. 이달 초에는 전국에서 모인 팔도 여성농업인 1200명과 도시 소비자 300명이 어우러져 담근 김장김치 2만포기와 전국 각지의 농협에서 담근 8만포기를 합해 총 10만포기의 김장김치를 형편이 어려운 이웃과 홀몸어르신들께 전달했다.
아울러 전국에 있는 시군 조직에서 김장김치를 담가 어려운 이웃에게 전하는 행사를 이어가고 있으며, 직거래장터와 2200여개 하나로마트에서는 무, 배추 등 김장채소를 최대 70%까지 저렴하게 공급해 국민의 장바구니 부담을 덜어주고 있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그의 저서 '부의 미래'에서 '제1의 맛은 소금, 제2의 맛은 양념, 제3의 맛은 식품 자체에서 우러나오는 발효의 맛'이라고 하며 '현대는 발효의 시대'라고 통찰한 바 있다. 우리 민족 최고의 발효식품인 김치를 집집마다 한 포기씩 더 담가 이웃과 나눔으로써 농산물 소비를 늘리고, 가족의 건강과 이웃 간 정도 챙기는 따뜻한 겨울이 되길 기대해본다.

김병원 농협중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