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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지금이 '국가비상사태'라는 장하준의 고언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12.10 17:09

수정 2018.12.10 17:09

"휴대폰 이후 신산업 있나"
체질개선 권고 새겨들어야
장하준 교수(55·영국 케임브리지대)가 현재 우리 경제가 처한 상황을 "국가 비상사태"라고 말했다. 지난달 말 런던에서 한국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다. 장 교수는 "한국 정부는 재벌 규제에만 갇혀 신산업을 창출하지 못하고 기업들은 투자를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굳이 분류하자면 장 교수는 중도좌파 성향이다. 레이건·대처식 신자유주의가 기승을 부릴 때는 시장만능주의를 매섭게 비판했다. 이럴 땐 좌파다.
하지만 기업을 보는 눈은 시장주의자와 폭넓게 겹친다. 런던 인터뷰에서도 장 교수는 해외 투기자본의 인수합병(M&A) 공격을 언급했다. "이런 상황에선 장기적으로 기업을 키워보겠다는 사람이 기업을 경영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럴 땐 우파다. 그의 말마따나 장하준은 좌우에서 협공을 받는 독특한 존재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소신파 장 교수의 말은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장 교수는 "울산을 보라"고 했다. 조선·자동차산업의 메카이던 울산은 몇 년째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는 "1990년대 개발한 휴대폰 이후 우리가 개척한 신산업이 있는가"고 묻는다. 외환위기 이후 설비투자는 반토막이 났고, 그 결과 경제체질이 약해져 일자리가 나오지 않는다. 장 교수가 보는 위기의 본질은 주축산업 붕괴다. 그나마 우리가 잘할 수 있는 바이오산업마저 삼성·재벌의 덫에 갇혔다. 차등의결권은 문재인정부에서 입도 벙긋하기 힘들다. 지난 10월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정책위의장이 벤처기업에 한해 차등의결권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당장 시민단체들이 재벌 개혁을 포기할 셈이냐며 들고 일어났다. 장 교수에 따르면 구글과 페이스북, 스웨덴 발렌베리그룹은 차등의결권으로 경영권을 방어한다. 페이스북 창업주인 마크 저커버그는 지분율이 10%대이지만 의결권 지분은 28.5%로 높아진다. 이 덕에 미국에선 구글·페이스북 같은 혁신기업이 줄을 잇는다. 우리는 차등의결권마저 재벌특혜라며 싹을 밟는다.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10일 이임사에서 "인기 없는 정책을 펼 수 있는 진정한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산업 창출과 같은 경제체질 개선이야말로 인기 없는 정책이지만 꼭 가야 할 길이다. 장 교수는 소득주도성장을 영양제에 비유한다.
그 뒤엔 운동도 하고 식단도 바꿔야 몸이 튼튼해진다. 하지만 문재인정부는 영양제만 맞으면 금세 몸이 좋아질 걸로 착각하고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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