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정훈식 칼럼] 네 탓으론 ‘제2 탈선’ 못 막는다

정훈식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12.12 17:15

수정 2018.12.12 20:14

KTX 탈선책임 떠넘기기
사장은 뒷수습 않고 사퇴
코레일과 통합 명분 없어
[정훈식 칼럼] 네 탓으론 ‘제2 탈선’ 못 막는다

지난 8일 발생한 KTX 강릉선 열차 탈선사고를 계기로 정부와 정치권이 고질적인 '네탓병'에 걸렸다. KTX를 운영하는 코레일의 최고책임자부터 관리·감독 책임을 지는 국토교통부, 여당에 이르기까지 사고 원인과 책임에 대해 남의 얘기하듯 한다는 여론의 비난이 거세다. 모두가 겉으로는 책임을 통감한다고 하지만 발언 내용을 뜯어보면 그 진정성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분위기다.

1차적 책임자인 오영식 코레일 사장은 사고 직후인 8일 "기온 급강하로 선로에 문제가 생겼을 가능성도 있다"며 사고 원인을 날씨 탓으로 돌렸다.

오 사장은 11일 사장직 사퇴의사를 밝히면서는 "그동안 공기업 선진화라는 미명 아래 추진된 대규모 인력감축, 과도한 경영합리화, 상하(열차운행과 시설관리 주체) 분리 등 철도가 처한 모든 문제가 방치된 것이 이번 사고의 근본적 원인이라고 본다"고 주장했다. 근본적 사고 원인을 전 정부의 철도개혁 정책으로 돌린 셈이다.
당장 눈앞의 사고를 수습하고 책임을 져야 할 코레일 수장이 수습을 뒤로한 채 물러나는 것도 무책임해 보이지만 이 시점에서 할 말은 아니라고 본다.

근본적으로 공기업 선진화가 사고의 근본 이유라는 오 사장의 주장에 동의하기 어렵다. 민영화 개념을 도입한 수서고속철도(SRT)는 운행을 시작한 지 2년이 지났다. 야권은 물론 국민들도 SR 출범으로 경쟁체제가 이뤄지면서 코레일의 운임정책, 부가서비스 등 서비스 수준이 개선됐다고 평가한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도 9일 "이번 일로 코레일에 대한 국민 신뢰가 더는 물러설 수 없을 만큼 무너졌다 생각한다"며 사고 원인을 철저히 조사해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하루 뒤에는 "이런 실력으로 남북 철도를 연결하겠다는 큰 꿈을 진행하기 민망하다"며 남의 일처럼 말했다가 여론에 혼쭐이 났다. 국토부야말로 KTX 운영 등 코레일을 관리·감독하는 상급기관이다. 이번 사고에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할 위치에 있다. 그런데도 김 장관은 이번 사건을 남의 일처럼 말해 비판을 받는다. 같은 책임자가 누구를 책임 지우겠다는 건지, 신뢰 추락은 코레일만의 일인지에 대한 지적에서다. 더불어민주당은 열차사고를 막기 위해 예산과 정비인력 확충 등 안전대책을 세워야 한다며 예산과 인력 탓을 했다. 이래서는 정부와 KTX에 대한 국민 불안을 잠재우기는커녕 제2의 탈선사고를 막을 수도 없다.

사고 수습을 위해 전문가로 구성된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가 조사에 나섰다. 감사원은 국토부 요청에 따라 내년 1월 코레일의 철도운영 시스템 전반에 대한 감사에 들어간다. 그런 만큼 사고조사와 코레일의 시스템 문제는 일단 결과가 나올 때까지 조사위와 감사원에 맡겨두는 게 옳다. 당정청은 모두 네 탓이 아닌 내 탓에 근거해 조사에 임해 철저한 원인 규명과 함께 진단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동시에 사고예방에 초점을 맞춰 사고대응, 유지·관리체계, 직원 훈련, 철도운영 전반의 안전매뉴얼을 점검하고 재정비해야 한다.
이번 일로 '철도안전과 공공성 제고'라는 코레일과 SRT의 통합 명분이 무색해졌다. 그런 만큼 통합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용역작업도 원점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국민의 안전을 따지는 일에는 '삼세판'이 없다. poongnue@fnnews.com 정훈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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