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사법부, 국민 신뢰 되찾아야

유선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12.13 17:19

수정 2018.12.13 17:19

[기자수첩] 사법부, 국민 신뢰 되찾아야

대한민국 최고의 호황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1997년. 엄청난 경제위기가 닥칠 것을 직감한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은 이 사실을 정부에 보고하고, 뒤늦게 정부는 국가부도를 막기 위한 비공개 대책팀을 꾸린다.

정부는 국가부도 위기에 처한 사실을 국민에게 알리지 않은 채 비밀리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를 만나 구제금융을 놓고 협상을 벌인다. 이 가운데 재정국 차관은 "국민에게 이 사실을 알릴 필요가 없다" "무조건 IMF 구제금융을 받아야 한다"며 통화정책팀장과 마찰을 빚는다. 요즘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는 개봉작 '국가부도의 날' 장면들이다.

영화에서 위정자들은 국민을 상대로 구제금융을 받는 일은 결코 없다고 사기극을 벌인 뒤 구제금융을 받기 위한 협상을 한다. 이 사실을 국민에게 알리지 않은 게 사회혼란 방지 차원이었지만 실상 국민은 정부가 하는 대로 따라오면 된다는 식이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크게 변한 게 없는 모양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 등의 국정농단 사태에 이어 양승태 사법부의 사법농단 의혹까지 불거졌다.

대법원이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박근혜정부와 함께 주요 재판에 대해 의견을 비밀리에 교류한 정황들이 검찰 수사를 통해 속속들이 드러난 것이다. 대법원은 일본 강제징용 등 재판을 고의 지연한 의혹에 이어 공보관실 운영비 비자금 조성, 법관 인사 불이익 등 다수 의혹에 휩싸였다.

국민은 삼권분립의 한 축이자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인 사법부마저 정부와 은밀한 거래를 했다는 사실에 충격에 빠졌다. 사법부가 생살여탈권을 쥐는 상황에서 외압이나 이념 등에 의해 한쪽으로 치우칠 때 다른 한쪽은 고스란히 피해를 보는 데 따른 것이다.

현재 사법농단 의혹의 윗선들은 "그런 일이 없다"며 혐의를 대부분 부인하고 있다. 정황들은 나왔지만 이를 자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검찰 수사를 통해 진위를 밝혀야 할 일이지만 사법부가 부당거래 대상으로 수사받는 차제가 국민을 가볍게 보고 국민의 신뢰를 무너뜨린 것은 자명하다.


2018년 6월 사법농단 의혹에 대한 첫 수사가 시작됐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법원이 검찰 수사를 받았던 날이기도 하다.
치욕으로만 생각하고 끝낼지, 다시 국민의 신뢰를 되찾을지는 사법부 의지에 달렸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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