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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난방공사 '열수송관 파열 참사' 사전경보 무시한 '人災'

정상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12.13 18:16

수정 2018.12.13 18:18

한국지역난방공사 황창화 사장(오른쪽) 등 공사 임직원들이 13일 정부세종청사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열 수송관 긴급점검 결과 및 정밀점검계획에 대한 브리핑을 앞두고 대기해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국지역난방공사 황창화 사장(오른쪽) 등 공사 임직원들이 13일 정부세종청사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열 수송관 긴급점검 결과 및 정밀점검계획에 대한 브리핑을 앞두고 대기해 있다. 사진=연합뉴스

50여명의 사상자(1명 사망)를 낸 지난 4일 고양시 백석역 열수송관 파열 사고가 '인재(人災)'임이 확인됐다. 위험 징후를 확인하고도 열수송관을 제때 보강·교체하지 않은 것이다. 노후 온수관이 파열돼 누수 사고가 설마 발생할까 하는 안이한 대응이 화를 불렀다. 관리도 부실했고, 안전점검 및 관리 기준도 느슨했다.
또 열수송관 관리 등 중요하면서도 위험한 업무는 지역난방공사 본사가 아닌 외주 용역업체가 맡고 있었다.

이에 따라 사고 책임기관인 한국지역난방공사가 즉각적인 노후 열수송관 보수 조치와 함께, 무사 안일주의에 빠진 조직 내부의 대대적인 쇄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기관장을 비롯해 경영진의 사고 책임소재를 분명히 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공기업으로서 감사기관의 감사 청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지역난방공사, 사고 징후 많았으나 위험성 몰라
13일 한국지역난방공사 황창화 사장 등 경영진들은 정부세종청사에서 가진 '사고수습 및 재발방지대책' 브리핑에서 사고 징후를 확인했음에도 즉각 대처하지 못한 사실을 인정했다.

이날 황 사장은 "지난 1991년 매설된 열수송관 연결구간의 용접부 덮개가 파열된 게 사고 원인으로 추정된다. 이는 공사 설립 이래 단 한번도 발생하지 않았던 초유의 사고 유형이다. 그간 온수 누출 양태가 어떤 취약 부위에 가는 금이 가거나 찢어짐 현상으로 있었던 것이지 이렇게 폭발적으로 급격히 분출된 상황은 없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황 사장은 "그래서 이런 사고 유형에 대해 인지하지 못했고, 이런 대형사고를 경험해보지 못해 전체 안전 관리 기준 자체가 안이하고 느슨한 면이 있었다. (열수송관) 관리 규정은 현재와 같은 최악의 상황들을 전제로 한게 아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황 사장의 해명과 달리, 사고 위험성을 경고하는 사전 징후는 여러 건이 있었다.

우선 지역난방공사는 사고 발생 전달, 고양시 전체 열수송관을 대상으로 보온재 손상 및 부식, 보수 이력 등 수명 저감 요인을 반영한 위험현황도(기대수명) 조사를 했다. 이 결과 고양지역 총 1220개 구간, 341㎞ 열수송관의 10%(127개 구간 34.1㎞)가 기대수명이 '0년'이 안되는 위험등급 1등급으로 확인됐다. 이후 기대수명이 지난 위험한 구간에 대해 즉각적인 보강, 교체공사를 했더라면 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또 지난 9월엔 감사원의 시정 조치 지적도 있었다. 감사원은 지역난방공사의 열 배관 위험현황도 등급 산정과 유지보수가 적정하지 않다며 시정 조치할 것을 통보했다. 배관의 노후 정도를 판단하는 주요 기준인 지열차이에 따른 안전점검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사고 구간은 10월 점검에서 잔여 수명이 1년 이하인 1등급으로 분류됐으나, 당시 별다른 보수를 하지 않았다. 결국 백석역 일대 사고 구간 열수송관은 27년째 그대로 사용돼왔고, 녹슨 용접부에서 사고가 났다. 황 사장은 "그동안 운영해온 열수송관 안전관리시스템이 변화하는 내외부 환경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 사고발생 이후의 초기 대응도 부족했다"고 인정했다.

이와 관련 전날 성윤모 산업부 장관도 에너지 기관장들을 소집한 자리에서 "문제의 열 수송관은 자체 위험도 조사를 통해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음에도 조치를 소홀히 해 사고가 발생했다는 뼈아픈 지적이 있다"고 했다.

■고양·분당·용인 등 203곳 이상징후 확인
지난 4일 사고발생 직후 5일부터 12일까지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와 지역난방공사는 전국의 온수배관 2164㎞ 가운데 20년 이상된 686㎞(32%) 구간을 열화상 카메라 등을 통해 긴급 점검했다. 그 결과 203곳에서 지열차이가 발생하는 이상징후가 확인됐다. 지열 차이가 크면 수송관 파열 위험이 높아진다. 위험징후가 있는 203곳은 여의도, 상암, 반포지역 일부에 78곳으로 가장 많다. 분당(49곳), 고양(일산, 24곳), 강남(서초 일부 포함, 18곳), 용인(15곳), 대구(12곳), 수원(7곳) 순이다.

지역난방공사는 지열차로 인해 사고 발생 가능성이 있는 지점 16곳도 확인했다. 고양지역 1곳의 수송관 밸브를 교체했고, 나머지는 별다른 누수가 발견되지 않은 상태다. 앞서 지역난방공사는 긴급 점검기간 발견된 5개 지점은 굴착해 미세누수가 발견된 1개 지점은 배관을 긴급 교체했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 5일 전날 저녁 고양시 백석역 근처에서 발생한 지역 난방공사 온수 배관 파열 사고 현장을 찾아 관계자로부터 보고를 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 5일 전날 저녁 고양시 백석역 근처에서 발생한 지역 난방공사 온수 배관 파열 사고 현장을 찾아 관계자로부터 보고를 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후속 정밀진단은 지열차가 3도 이상 발생하는 지점 203곳을 중심으로 내년 1월12일까지 실시된다. 황 사장은 "취약지점은 즉시 보수 및 교체에 착수하겠다. 내년 10월 말까지 보수 또는 교체를 완료하겠다"고 했다.

문제는 동일한 사고의 재발 가능성이다. 백석역 사고 원인과 동일한 '열수송관 구간 연결부 용접부위'를 가진 지점이 전국 443개에 달한다. 약 80%가 수도권에 있다. 지역난방공사는 연결구간 용접부 전량 보강 또는 열수송관 교체 작업에 들어갔다.

■공사, 외부감사 조직내부 쇄신 시급
안전관리 강화를 위해 열수송관 교체 등 기준 자체도 개선해야 한다.

이를 위해 지역난방공사는 지하매설물 관련 외부전문가로 위원회를 구성키로 했다. 특히 1998년 이전에 설치된 20년이상의 열수송관의 보수 및 교체대상 선정기준도 개선한다. 열수송관 유지보수예산도 연 200억원에서 1000억원 수준으로 높인다. 열수송관 점검·감시 인력도 확충하고, 용역업체 직원 112명도 열수송관 안전관리 자회사를 설립해 정규직으로 고용할 계획이다.

현재 열수송관 점검 등 위험한 업무는 지역난방공사가 지난 2016년부터 용역업체에 맡기고 있다. 지역난방공사가 관리하는 열수송관은 전국(총 3956km)의 54.7%(2164km)다. 나머지 1792km는 민간기업, 지자체 등 37개 지역난방사업자가 각자 소유한 배관을 자체 책임으로 관리한다. 지난 11일, 12일 잇따라 파열사고가 난 서울 목동지역,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 등 일부는 서울시 산하 서울에너지공사, 안산도시개발(안산시, 삼천리 공동 지분) 등이 운영한다. 이들은 연 1회 에너지공단을 통해 정기검사를 받을 뿐, 관리는 민간기업 책임이다.

이같이 지역난방공사가 후속조치를 실행, 발표했음에도 공기관의 안이한 안전관리 실태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크다.

백석역 누출 사고 당시 현장 수습 조치는 제때 이뤄지지 않았다. 시야를 가린 많은 수증기와 뜨거운 물이 쏟아져 나와 피해를 키웠지만 지역난방공사 직원들이 신고가 접수된 지 40분이나 지난 뒤에 도착했다. 도로 위로 쏟아져 나오는 뜨거운 물을 차단하기 위해 밸브를 잠그는 데에는 1시간 가량이나 걸렸다.

지역난방공사는 조직내 안전의식 부재, 위험 인지후 늑장 조치 등에 대한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황 사장 등 지역난방공사 경영진의 사고원인 및 재발방지에 대한 설명도 사고발생후 열흘 가까이 지난 시점이다. 또 노후 수송관 인근 지역 시민들의 불안감을 해소하기는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일단 지역난방공사는 대대적인 조직, 인력, 예산, 매뉴얼, 업무방식 등 조직 전반을 쇄신하겠다고 약속했다. 황 사장은 "과감한 인적 쇄신, 외부 전문가 참여 확대를 비롯, 객관성 확보를 위해 철저한 자체 감사뿐아니라 필요한 경우에는 감사기관에 감사청구도 할 계획"이라고 했다.


한편, 경찰은 지난 11일 지역난방공사 고양지사와 열수송관 보수·점검을 맡은 하청업체 2곳을 압수수색하는 등 지역난방공사가 규정대로 업무를 처리했는지 등을 집중 조사하고 있다.

skjung@fnnews.com 정상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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